Models · 001
리사 폰사그리브스
Lisa Fonssagrives
- 출생
- 1911-05-17
- 사망
- 1992-02-04
- 국적
- 스웨덴
움직임을 배운 출발
리사 폰사그리브스는 1911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미술과 무용을 배웠고 베를린에서 마리 비그만의 교육을 접한 뒤 스웨덴에서 춤을 가르쳤다. 이 훈련은 옷의 선을 이해하고 자세를 만드는 실무적 기반이었다. 이후의 사진에서 보이는 균형 잡힌 팔과 상체, 길게 이어지는 윤곽은 타고난 외모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몸의 움직임을 시각적 구성으로 바꾸는 능력을 먼저 익힌 인물로 볼 수 있다.[1][2] 무용을 배운 시간을 모델 활동 이전의 짧은 이력으로만 처리하면 두 분야 사이의 연결을 놓치기 쉽다. 사진을 읽을 때에는 상체가 어느 방향으로 놓이고 팔이 어떤 선을 만드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는 특정 자세가 어떤 수업에서 나왔다고 단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훈련의 기록과 작품에서 관찰한 특징을 나누어 보면, 생애의 초기 경험이 이후 작업을 이해하는 하나의 관점이 된다. 미술과 움직임에 대한 관심을 함께 읽을 때 경력의 시작도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

파리에서 카메라 앞으로
리사 폰사그리브스는 파리에서 무용 활동을 하던 중 사진가 빌리 마이발트의 눈에 띄었다. 1936년의 촬영과 호르스트 P. 호르스트의 테스트를 거치며 모델 일이 본격화됐다. 이미 성인이 된 뒤 다른 예술 분야에서 패션으로 옮겨온 경력은 십 대 데뷔가 중심인 후대 모델 서사와 다르다. 카메라 앞에서 요구되는 동작을 익숙한 훈련과 연결했고, 화가들의 초상화 속 자세를 살펴보며 자신의 표현 범위를 넓혔다.[1][3] 이 전환을 이해하려면 무대에서 움직이는 일과 카메라 앞에서 멈추는 일이 서로 다른 조건을 가진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사진에서는 선택된 순간의 윤곽이 남으므로 손과 발의 위치도 화면의 구성에 참여한다. 초기 경력을 읽는 독자는 데뷔라는 단어 하나보다 어떤 작업을 통해 새로운 분야로 옮겨 갔는지에 주목할 수 있다. 파리에서 시작된 촬영 경험과 앞서 익힌 표현 방식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연도를 나열하는 것과 다른 읽기 방법이다.
여러 사진가와 만든 이미지
리사 폰사그리브스의 활동은 한 사진가의 뮤즈라는 말로 좁히기 어렵다. 페르낭 폰사그리브스뿐 아니라 조지 호이닝겐휘네, 어윈 블루먼펠드, 루이즈 달울프, 맨 레이 등과 협업했다. 각 사진가가 사용하는 조명과 공간이 달랐다는 점은 작업 목록 자체에서도 드러난다. 우아한 실내 초상부터 야외의 역동적인 장면까지 오간 기록은 모델이 촬영의 구성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패션 사진 자료다.[2][3] 협업 목록을 읽을 때에는 이름을 모두 외우기보다 서로 다른 작업의 조건을 비교하는 편이 도움이 된다. 배경이 넓게 보이는 장면과 인물 가까이 다가간 장면에서는 몸의 역할도 다르게 읽힌다. 의복의 전체 윤곽을 보여 주는지 작은 디테일을 강조하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같은 사람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은 비교의 기준이 되고 촬영 방식의 차이는 표현의 범위를 보여 준다. 한 관계에 경력을 모두 묶지 않는 읽기는 이러한 차이를 남겨 두기 위한 것이다.
뉴욕과 전후의 절정
리사 폰사그리브스는 1939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유럽에서 쌓은 명성은 뉴욕의 잡지 작업으로 이어졌고, 1940~1950년대 보그와 하퍼스 바자 등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1949년에는 타임 표지에 실리며 모델의 이름 자체가 대중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순간을 만들었다. 잡지 속 옷을 소개하는 기능과 한 사람의 개성을 알리는 기능이 겹쳤다는 점에서, 이 시기의 활동은 이후 슈퍼모델이라는 개념을 논할 때 자주 거론된다.[2][3] 미국 이주 이후의 기록을 볼 때에는 작업의 장소가 바뀌었다는 사실과 대중에게 알려지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을 구분할 수 있다. 잡지의 내부 지면과 표지는 독자가 인물을 만나는 서로 다른 위치다. 표지에 등장한 사건은 중요한 이정표지만 그 전후에 이어진 작업까지 함께 보아야 활동의 지속성을 이해할 수 있다. 유명한 한 장면을 중심으로 모든 경력을 설명하기보다 앞선 준비와 이후의 반복적인 작업을 연결해 읽으면 전후 활동의 흐름이 더 잘 드러난다.
어빙 펜과의 협업
리사 폰사그리브스는 어빙 펜과 장기간 작업했고 1950년 그와 결혼했다. 펜의 단정한 배경과 절제된 조명 속에서 그녀의 자세는 의복의 구조를 읽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다만 두 사람의 관계만을 중심에 놓으면 이전부터 형성된 전문성과 다른 작가들과의 작업을 놓치기 쉽다. 패션 사진의 공동 제작자로 읽을 때, 인물의 시선과 손끝, 천이 접히는 방향을 조율한 모델의 역할이 더 선명해진다.[1][2] 이 시기의 이미지를 자세히 볼 때에는 옷의 선을 가리는 부분과 드러내는 부분을 구분해 보자. 손이 허리 가까이에 놓였는지 몸에서 떨어져 있는지에 따라 화면에서 읽히는 공간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관찰은 작품을 함께 만든 사람들의 역할을 생각하게 한다. 결혼이라는 생애의 사건과 직업적인 협업이라는 기록을 각각 설명하면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대신하지 않는다. 개인의 관계와 전문적인 경력을 함께 다루되 두 정보의 성격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델 이후의 제작
리사 폰사그리브스는 모델 활동을 줄인 뒤에도 조각과 디자인 등으로 창작을 이어 갔다. 젊은 시절 미술을 공부한 경력과 연결되는 변화였으며, 의상을 입고 보여 주던 경험이 형태를 직접 만드는 일로 확장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은퇴를 단순한 사라짐으로 서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녀의 경력은 춤, 카메라, 의복, 입체 작업 사이를 이동하며 신체와 형태를 계속 탐구한 과정이었다.[1][2] 후기의 창작을 앞선 경력과 연결할 때에는 모든 작업이 같은 목적이었다고 단정하지 않아도 된다. 서로 다른 매체에서 형태를 다뤘다는 사실과 각각의 결과물이 가진 차이를 함께 볼 수 있다. 사진 속에서 의상을 보여 주는 일과 입체물을 직접 만드는 일은 제작의 방식이 다르다. 그 차이를 남겨 두어야 경력의 변화도 의미 있게 읽힌다. 활동을 줄였다는 표현 뒤에 어떤 제작이 이어졌는지 살펴보는 것은 인물의 생애를 한 직업의 전성기로만 제한하지 않는 방법이다.
전시로 다시 읽는 유산
리사 폰사그리브스는 1992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2024년 파리 유럽사진미술관의 전시는 가족 아카이브와 여러 작가의 사진을 통해 경력을 재조명했다. 최초의 슈퍼모델이라는 수식은 역사적 평가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며, 단일한 공식 기록처럼 단정할 필요는 없다. 오래 남은 의미는 잡지의 익명적 신체가 아니라 이미지 제작에 참여한 전문인이었다는 데 있다. 현재의 평가는 남아 있는 작품과 전시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2][3] 전시에 포함된 자료는 그녀가 춤추는 사람에서 촬영에 참여하는 사람, 다시 직접 형태를 만드는 예술가로 이동한 경로를 연결한다. 사진의 발표 시기와 훗날의 인화·전시 시기를 구분하는 것도 아카이브를 읽는 기본이다. 이 경력을 비교할 때에는 정지된 자세 안에 움직임의 경험이 어떻게 남아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팔과 손의 방향, 옷의 선을 따라 놓인 몸의 각도는 의상을 보여 주는 방식에 관여한다. 같은 인물이라도 촬영자와 의상이 달라지면 표현이 달라지므로 대표 작품 한 장으로 모든 작업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초기 활동과 후기의 조형 작업을 이어 읽는 것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형태를 다루는 방법을 비교하는 한 가지 관점이 된다. 사후에 열리는 전시는 남아 있는 자료를 다시 선택하고 배열한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작품이 처음 제작된 때와 전시에서 새롭게 소개된 때를 따로 적으면 기록을 정리하기 쉽다. 관람자가 지금 발견하는 의미와 당시에 그 이미지가 사용된 목적은 같지 않을 수 있다. 생애의 순서와 작품을 오늘 읽는 관점을 함께 유지하면 과거를 현재의 기준으로 단순하게 평가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이 글의 출처를 따라갈 때에도 연대기와 작품 설명을 번갈아 확인하는 방식이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