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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웨스트우드: 과거의 옷을 다시 조립하다

펑크의 상점에서 미니 크리니까지, 익숙한 의복의 용도와 비례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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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 머리와 광택 있는 주황색 재킷, 여러 목걸이가 보이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초상.
비비안 웨스트우드, 2008년. 사진: 마티아 파세리.Mattia Passeri / Wikimedia Commons · WebP conversion / resizing · 출처 · 이용 조건

짧은 치마에 들어간 긴 역사

1985년의 미니 크리니는 허벅지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와 종 모양으로 부풀린 외곽선을 결합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하우스 역사를 이 옷에서 시작하면 과거를 참고한다는 것이 오래된 의상을 그대로 복원하는 일과 다르다는 점이 보인다. 크리놀린은 치마를 몸 바깥으로 펼치는 속구조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길이를 줄이면서 그 부피를 남겼다.

긴 드레스의 격식과 짧은 치마의 움직임이 한 몸에 놓이는 것이다. 역사적 재단은 박물관 안의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의 몸이 차지하는 공간을 바꾸는 방법이 됐다. 이 옷을 단순히 귀여운 파티복이라고 부르면 아래쪽을 지탱하는 구조와 길이 사이의 긴장이 사라진다.

반대로 옛 복식의 재현이라고만 설명하면 다리를 드러내는 비례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옷을 읽을 때 무엇을 가져왔는지와 함께 무엇을 과감히 생략했는지도 살펴야 한다. 과거의 형식을 다르게 조립하는 태도는 이후 작업에도 계속 나타난다.

교실에서 킹스로드의 상점으로

1941년 영국 더비셔에서 태어난 그는 십대에 가족과 런던으로 이주했고 초등학교 교사로 훈련받았다. 처음부터 패션 학교와 대형 하우스를 순서대로 거친 경력은 아니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하우스 역사에서 중요한 초기 환경은 맬컴 매클래런과 함께 운영한 킹스로드 430번지의 상점이었다.

상점은 이름과 취급하는 옷을 바꾸면서 음악과 거리 문화가 만나는 장소가 됐다. 1974년에는 섹스, 1976년에는 세디셔너리스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펑크는 찢어진 천이나 장식 핀 하나로 설명되는 완성된 스타일이 아니었다.

판매 공간, 음반과 공연, 고객의 옷 입는 방식이 서로 영향을 주는 과정이었다. 매클래런의 음악 활동과 그의 의복 제작을 구별하면서도 두 사람이 함께 만든 환경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나중의 성공을 어린 시절에 이미 정해진 운명처럼 연결할 근거는 없다.

교사였던 시절과 상점을 통한 실험이라는 확인 가능한 경로만으로도 정규 패션 교육 밖에서 형성된 작업의 조건을 설명할 수 있다.

묶는 옷이 움직임을 드러내다

1976년경의 본디지 수트는 군복과 작업복을 떠올리게 하는 바지에 끈과 지퍼, 별도의 천 조각을 더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하우스 역사의 펑크 작업에서 부속은 표면에 붙인 상징에 그치지 않는다. 다리 사이를 연결하는 끈은 걸음의 폭에 영향을 주고, 지퍼는 옷이 열리는 위치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얌전하게 감춰야 할 기능과 신체의 제약이 오히려 관찰의 대상이 된다. 해진 모헤어와 도발적인 도안의 셔츠도 같은 상점의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다만 그 옷을 입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정치적 생각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옷의 구성과 실제 문화적 사용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 사회의 예절을 거스르는 효과는 옷 자체뿐 아니라 그것이 등장한 장소와 보는 사람의 기대에서도 생겼다. 반듯한 재킷과 바지의 형태를 일부 유지했기 때문에 추가된 끈과 절개는 더욱 분명해졌다.

익숙한 의복의 문법을 남겨 놓고 그 작동 방식을 어긋나게 하는 방법이었다.

해적 컬렉션 이후의 독립

1981년의 파이럿은 첫 캣워크 컬렉션으로, 넉넉한 셔츠와 헐렁한 바지, 몸을 비대칭으로 감싸는 천을 보여줬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하우스 역사에서 역사적 재단은 이때 과장된 시대극의 장식보다 옷이 매달리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낮아진 진동과 느슨한 허리, 접힌 천은 몸에 딱 맞는 옷과 다른 움직임을 만든다.

1983년 위치스에서는 키스 해링의 그래픽과 신축성 있는 의복이 연결됐으며, 이는 매클래런과의 마지막 공식 공동 컬렉션이었다. 이후 사업 파트너 카를로 다마리오의 지원은 독립적인 활동을 이어 가는 데 중요한 조건이 됐다. 상점에서 출발한 사람이 런웨이와 국제적인 사업으로 옮겨 가는 과정은 미학의 변화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주문을 받고 생산하고 유통하는 조직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초기 공동 작업을 뒤의 개인 브랜드 작업과 구분하면 누구의 역할이 어떤 시기에 작동했는지 보인다. 협업의 끝이 곧 이전 영향의 완전한 소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회화와 속옷을 바깥으로 꺼내다

1990~1991년 포트레이트 컬렉션에서는 프랑수아 부셰의 회화가 코르셋 표면에 옮겨졌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하우스 역사에서 그림은 미술적 권위를 붙이는 표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평평한 이미지가 몸통의 곡면을 따라 휘고, 옷의 봉제선과 가장자리가 그림을 다시 나눈다.

코르셋은 원래 옷 안에서 몸을 정리하는 장치였지만 이제 관객에게 보이는 주된 의복이 된다. 1996년의 와토 드레스에서는 등 뒤의 천과 비대칭적인 노출이 서로 다른 시대의 자세를 연결했다. 역사적 재단을 이용해 만들어진 결과는 한 시대의 완전한 복제보다 여러 출처가 함께 있는 구성에 가깝다.

작품을 비교할 때 회화의 제목만 확인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림이 어디에서 잘리고 몸의 어느 부분에서 휘는지, 천이 뒤쪽으로 얼마나 흘러내리는지도 중요하다. 장식과 구조를 함께 보면 익숙한 미술 이미지가 실제로 입을 수 있는 물건으로 바뀌는 과정이 드러난다.

한 이름 아래의 여러 손

1987년 해리스 트위드 컬렉션의 재킷과 코르셋, 1993년 앵글로매니아의 타탄은 영국의 복식 표지를 새 비례로 다룬 사례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하우스 역사는 한 사람이 모든 옷을 혼자 만든 이야기로 읽어서는 안 된다. 앤드리어스 크론탈러와의 오랜 디자인 협업은 특히 후기 작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2016년 골드 라벨은 그의 이름을 앞세운 명칭으로 바뀌었다. 이는 발표된 옷의 책임과 기여를 구분해 기록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직물 업체와 패턴 제작자, 재봉 인력의 역할은 완성된 옷의 소재와 균형에 남아 있다.

후기에 두드러진 기후 문제와 시민의 권리에 대한 공개 활동 역시 자료로 확인되는 발언과 행동을 중심으로 살펴야 한다. 모든 옷에 같은 정치적 메시지를 소급해서 부여할 필요는 없다. 쇼에서 전달한 주장, 생산된 의복, 기업의 운영은 연결되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며 각각의 근거를 따로 확인해야 한다.

옷의 출처를 새롭게 배열한 방식

그는 2022년 사망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하우스 역사에서 생전의 개인 작업, 공동 디자인, 사후의 브랜드 발표는 구분해 다뤄야 한다. 펑크 상점의 본디지 수트, 파이럿의 헐렁한 옷, 미니 크리니, 포트레이트의 몸통 의상을 함께 보면 서로 다른 외양 아래 이어지는 방법이 보인다.

이미 사회적 의미가 붙은 물건을 가져와 길이와 위치, 용도를 바꾸는 것이다. 속옷을 밖으로 드러내거나 옛 치마의 길이를 줄이는 변화는 착용자의 자세와 주변의 시선도 바꾼다. 이를 무조건 반항적인 성격의 결과라고 설명하면 구체적인 제작의 선택이 가려진다.

어떤 시대의 어떤 부분을 선택했고 무엇을 버렸는지 비교하는 편이 유용하다. 박물관의 소장품은 상업적 이미지가 짧게 보여주는 순간을 넘어 안쪽 구조와 실제 재료를 살펴볼 기회를 준다. 오늘 이 옷을 읽는 일은 유명한 이름을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기존의 의복 규칙이 어떻게 다시 조립될 수 있는지 배우는 과정이다.

주요 연표

  • 1941 — 더비셔에서 출생
  • 1981 — 파이럿 발표
  • 1985 — 미니 크리니
  • 1990–1991 — 포트레이트 컬렉션
  • 2016 — 골드 라벨 명칭 변경
  • 2022 — 사망

참고 자료

  1. V&A — A taste for the past
  2. V&A — Punk, New Romantic and beyond
  3. V&A — Vivienne Westwood collection
  4. London Museum — King’s Road royal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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