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그레: 주름과 부피로 조각한 옷
주름과 부피로 조각한 옷 — 실크 저지 · 미세 주름 · 입체 구조
ÉPOPLI ·

흰 드레스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
1950–51년의 아이보리와 파란색 이브닝드레스는 한 가지 고전적인 양식을 반복한 옷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마담 그레 하우스 역사를 천의 움직임에서 읽으면 고정된 이미지와 다른 변화가 드러난다. 실크 저지는 고리 모양의 조직으로 짠 직물로, 부드럽게 늘어나고 늘어뜨릴 수 있다는 성질을 갖는다. 몸을 감싸는 부분과 아래로 떨어지는 부분은 같은 재료여도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FIT 박물관은 그리스풍 드레스가 수십 년 동안 같은 상태로 유지됐다는 통념을 반박한다. 주름을 모으는 위치와 노출되는 신체의 면적, 옆선의 방향은 계속 달라졌다. 옷이 고대 조각을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고대 의복의 정확한 복제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고객이 입고 움직이도록 만든 주문복이라는 조건이 먼저 존재한다. 이 옷을 읽는 출발점은 시간을 초월했다는 칭찬보다 천의 무게가 어디에 걸리는지 살피는 일이다.
알릭스 바르통에서 그레까지
본명은 제르멘 크레브스로 1903년 태어났다. 1933년 쥘리 바르통과 함께 알릭스 바르통을 열었고 이듬해 하우스는 알릭스라는 이름으로 운영됐다. 마담 그레 하우스 역사에서는이 시기의 공동 사업과 이후 그레라는 이름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명칭의 변화가 곧 작품 전체의 단절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라벨과 연도를 확인하면 제작 시기의 범위를 더 정확하게 좁힐 수 있다.
1942년 이후 사용한 그레라는 이름은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이 됐다. 조각을 하고 싶었다는 본인의 말은 제작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지만 정규 조각 교육이나 특정 작업실의 경력을 임의로 덧붙일 근거는 아니다. 봉제와 피팅의 숙련은 남은 옷에서 확인해야 한다. 줄리 바르통과 초기 공방의 존재를 기록하는 일도 중요하다. 한 명의 유명한 디자이너를 중심에 놓더라도 독립과 사업의 기반을 함께 만든 사람들을 지우지 않아야 한다.
천을 모으는 작은 단위
마담 그레 하우스 역사의 미세 주름은 작은 간격을 반복해 넓은 천을 좁은 부분으로 모으는 기술이다. 촘촘하게 고정된 윗부분과 자유롭게 풀리는 치마 사이의 차이가 실루엣을 만든다. 장식 끈을 덧대는 방식과 달리 옷의 재료 자체가 표면과 구조를 동시에 이룬다. 실크 저지가 빛을 부드럽게 받아들이면 주름은 선명한 선보다 연속적인 그림자로 보이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직물 제한은 많은 양의 천을 쓰던 작업에도 영향을 주었다. 전후 재료의 공급이 달라지자 미세 주름의 사용은 다시 확대됐다. 이 변화는 창작자의 의지만으로 모든 형태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수급과 노동시간, 고객이 요구하는 용도가 함께 옷을 만든다. 주름의 간격을 수치 하나로 일반화하지 않고 작품마다 살펴야 하는 이유도 같다. 작은 차이가 몸을 덮는 방식과 움직이는 폭을 바꾸며, 이를 유지하는 봉제 작업은 완성된 표면 뒤에 가려져 있다.
단단한 천으로 만든 다른 부피
마담 그레 하우스 역사에는 부드러운 고전풍 드레스와 함께 타프타 코트와 큰 소매를 가진 옷도 존재한다. 입체 구조를 만드는 재료의 선택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진다. 얇고 빳빳한 타프타는 접힌 형태를 비교적 또렷하게 유지하고, 무게 있는 천은 몸 주변에 큰 덩어리를 만든다. 조각적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재료의 반응을 설명할 때 구체적인 의미를 얻는다.
FIT가 소개한 투란도트 이브닝드레스는 크기가 다른 세 개의 원을 겹쳐 단계적인 윤곽을 만든다. 패턴의 기본 도형은 단순하지만 착용하면 천이 접히고 내려앉아 복잡한 표면이 된다. 풍성한 소매의 드레스 역시 몸과 옷 사이의 빈 공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모든 작품에 동일한 내부 지지대가 들어 있다고 추정해서는 안 된다. 어떤 옷은 재료의 강도와 접힘에 의존하고 다른 옷은 숨은 여밈 장치를 사용한다. 실제 안쪽을 조사해야 외관을 지탱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여행 이후의 평면과 잠옷
1958–59년 인도 여행 뒤의 작업은 사리 등 여러 복식의 구성 방법과 연결해 논의된다. 마담 그레 하우스 역사에서 지역의 영향은 문양이나 이국적인 이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직사각형과 원형의 천을 크게 보존하면서 몸에 걸치는 방법을 찾는 접근이 중요하다. 사리, 카프탄과 기모노는 서로 다른 역사와 착용법을 지니므로 하나의 전통으로 묶지 않아야 한다.
후기의 실내용 바지 앙상블은 저녁옷과 다른 상황에서 입을 수 있는 여유를 제안했다. 미니스커트나 짧은 바지와 결합한 작업도 있어 늘 긴 드레스만 만들었다는 인상과 거리가 있다. 입체 구조를 정교하게 다루던 경험은 느슨한 옷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겉으로는 큰 천을 가볍게 걸친 듯해도 안쪽의 마감과 고정은 고객의 몸에 맞추어 조정된다. 이 시기의 작업을 통해 고전적인 이미지와 동시대의 유행이 한 경력 안에서 공존했음을 알 수 있다.
공방의 시간과 남겨진 그림
마담 그레 하우스 역사를 완성품만으로 읽으면 반복되는 피팅과 손바느질의 시간이 보이지 않는다. 한 벌을 몸에 맞추어 고정하는 작업에는 재단과 봉제 담당자의 숙련이 필요했다. 디자이너의 드로잉과 제작용 스케치도 서로 다른 목적을 갖는다. 갈리에라에 소장된 수천 점의 도면은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작업의 폭을 보여준다.
빠르게 그린 생각의 메모와 다른 사람이 제작 정보를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한 그림을 구분하면, 창작이 공방의 언어로 바뀌는 과정을 따라갈 수 있다. 그림 한 장만으로 재료의 두께나 모든 봉제선을 복원할 수는 없지만, 남아 있는 옷과 비교하면 누락된 단서를 보완할 수 있다. 고객의 주문과 착용 기록 역시 중요한 자료다. 형태가 비슷한 두 드레스라도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입었는지에 따라 옷의 의미가 달라진다. 공방을 한 사람의 신비로운 감각으로만 설명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복 속에서 변화 찾기
오랜 활동은 1980년대 말까지 이어졌고 그녀는 1993년 사망했다. 마담 그레 하우스 역사의 사후 평가는 박물관 연구와 다른 디자이너들의 수집을 통해 넓어졌다. 아제딘 알라이아 재단의 소장품은 서로 다른 시기의 옷을 비교할 수 있는 자료다. 후대에 그레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상품과 생전의 주문복을 구분해야 작품의 제작자를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다.
실크 저지 드레스, 투란도트의 층진 형태와 후기 바지 앙상블은 한 가지 스타일의 복제가 아니다. 천을 어떻게 모으고 어디에서 풀어 주는지에 대한 서로 다른 답이다. 오늘이 작업을 참고한다면 주름의 외관보다 재료와 몸 사이의 관계를 살피는 편이 유용하다. 움직일 때 남는 여유와 몸을 지지하는 지점, 겉에서 드러나지 않는 마감까지 함께 읽어야 한다. 그렇게 보았을 때 고전적이라는 평가는 변화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반복되는 질문을 오랜 시간 새롭게 풀었다는 의미가 된다.
주요 연표
- 1903 — 출생
- 1933 — 알릭스 바르통 공동 설립
- 1934 — 알릭스 하우스
- 1942 — 그레라는 이름 사용
- 1958–59 — 인도 여행과 이후의 구성 실험
- 1993 — 사망
참고 자료
- FIT — The Grecian gown
- FIT — Sculpting with fabric
- FIT — Regional construction influences
- Fondation Azzedine Alaïa — Madame Grès
- FIT — Evening dress, 1950–1951
- FIT — Grès, Chic Chicago
- Palais Galliera — Madame Grès draw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