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라거펠트 — 하우스의 기호를 다시 쓰다
끌로에의 샤워기 드레스부터 샤넬의 무대까지, 기호를 바꾸는 제작의 과정.
ÉPOPLI ·

샤넬의 문법을 현재형으로 바꾸다
칼 라거펠트 샤넬 역사는 창립자의 작품을 얼마나 충실하게 복제했는가보다, 익숙한 기호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1983년 샤넬에서 선보인 작업은 기존 하우스의 이름을 지우지 않으면서 새로운 옷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보여준다. 트위드 재킷, 체인, 진주, 검정과 흰색은 그 자체로 완결된 답이 아니었다.
재킷을 어느 길이에서 자르고 장식을 얼마나 크게 만들며 어떤 신발과 함께 보여줄 것인지가 매번 달라졌다. 같은 재료도 비례와 조합에 따라 보수적인 정장 또는 젊은 일상복으로 읽힌다. 여기에서 계승은 과거의 형태를 고정하는 작업이 아니라, 알아볼 수 있는 요소를 남긴 채 그 쓰임을 다시 조정하는 일이다.
다만 오늘의 모든 샤넬을 한 사람의 발명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가브리엘 샤넬이 마련한 의복과 사업의 토대, 그 뒤를 이어온 제작 인력, 각 시대의 소비 환경을 함께 보아야 그의 개입이 정확하게 드러난다.
경연대회에서 여러 하우스의 작업실로
칼 라거펠트 샤넬 역사를 이해하려면 샤넬 이전의 긴 실무 경험을 먼저 살펴야 한다. 1933년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파리로 옮겨 패션 분야의 경력을 시작했다. 1954년 국제 양모 사무국 경연에서 코트 디자인으로 수상한 뒤 1955년 피에르 발맹의 하우스에 들어갔다.
이후 장 파투와 끌로에 등 서로 다른 제작 환경을 경험했다. 이 경로는 오늘날의 패션 학교 학위 하나로 정리되는 교육 과정과 다르다. 도안이 옷으로 바뀌는 현장, 주문복과 기성복의 일정, 서로 다른 고객을 상대로 일하는 과정이 중요한 배움의 장이었다.
초기 경력의 세부 재직 연도는 자료마다 집계 방식이 달라, 계약 형태가 불분명한 구간을 하나의 확정된 직함으로 묶지 않는 편이 정확하다. 그가 훗날 여러 브랜드를 동시에 맡았다는 사실도 단순한 다작의 기록보다 서로 다른 하우스의 어휘를 구분해 다루는 훈련으로 읽을 수 있다. 개인 브랜드는 1984년에 출범했으며 샤넬과는 별도의 사업이었다.
샤워기가 드레스 위에 놓인 이유
칼 라거펠트 샤넬 역사와 나란히 읽을 작품으로 끌로에의 1983–84년 가을·겨울 부에 드레스가 있다. 옷 위의 샤워기와 흐르는 물, 몸을 둘러가는 호스는 자수와 장식으로 표현된다. 트롱프뢰유는 평면의 표면이 실제 사물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눈속임 기법이다.
이 작품에서는 욕실의 물건이 저녁 외출용 의복으로 이동하면서 사물의 익숙한 용도가 흔들린다. 장식의 재미만 보는 대신 호스의 곡선이 몸통을 어디에서 가로지르는지, 물줄기의 수직선이 치마의 길이와 어떻게 만나는지 살펴볼 수 있다. 그림은 이미 완성된 옷에 붙인 설명이 아니라 시선을 움직이는 구조가 된다.
트롱프뢰유를 통해 재단선을 강조하거나 다른 선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일상의 사물을 고급 의복의 표면으로 옮겼다는 점에서도 이 작업은 뒤의 대규모 쇼와 연결되지만, 끌로에를 위해 만든 작품을 샤넬의 컬렉션으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브랜드별 제작 맥락을 나누어야 반복되는 관심과 달라지는 표현을 함께 볼 수 있다.
펜디의 재료 실험과 팀
칼 라거펠트 샤넬 역사에는 펜디에서의 작업을 구분해 놓을 필요가 있다. 1965년 펜디 자매들과 일을 시작한 그는 창립자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가족 기업의 디자이너였다. 모피를 무거운 외투의 재료로만 취급하지 않고 가볍고 다양한 표면으로 다루려는 방향은 재료의 손질과 조합에 달려 있었다.
이때 스케치 한 장만으로 결과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모피를 다루는 기술자, 패턴을 만드는 인력, 봉제와 마감 담당자가 평면의 아이디어를 입을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야 한다. 브랜드의 공식 설명은 이러한 기술을 강조하지만, 홍보상의 가치 판단과 실제 제작 정보를 나누어 읽는 것이 좋다.
소재의 유연성이나 표면의 변화는 의복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이고, 모피의 사용을 둘러싼 윤리적 판단은 별도로 논의할 문제다. 다양한 하우스에서 이어진 활동은 하나의 서명을 모든 옷에 찍는 방식보다, 각 조직이 가진 기술과 상품의 성격을 달리 운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림을 옷으로 옮기는 협업
칼 라거펠트 샤넬 역사를 개인의 영감으로만 설명하면 제작 과정의 중요한 절반이 사라진다. 그의 스케치는 작업의 출발점이었지만 실제 재료의 두께, 곡면 위 장식의 위치, 움직일 때 생기는 처짐은 제작 과정에서 해결해야 했다. 샤넬의 트위드 역시 사진 속 무늬가 아니라 여러 실이 얽힌 입체적인 직물이다.
재킷의 재단과 안쪽 마감에 따라 같은 직물의 움직임이 달라진다. 트롱프뢰유 장식이 들어가는 경우에는 보이는 그림과 실제 옷의 구조 사이의 간격까지 조율해야 한다. 자수와 꽃 장식, 봉제 담당자가 수행한 일을 디자이너의 이름 아래 보이지 않게 두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스케치와 완성품의 관계를 중심에 놓은 전시는 이러한 공동 제작의 관점을 제시했다. 다만 스케치와 옷이 닮았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공정이 미리 결정되어 있었다고 추정할 수는 없다. 완성품의 안팎, 소재의 두께, 손으로 이루어진 마감을 함께 살펴야 그림이 의복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읽을 수 있다.

2014년 슈퍼마켓이라는 무대
칼 라거펠트 샤넬 역사에서 2014년 가을·겨울 쇼는 옷과 유통의 이미지를 한 장면으로 묶었다. 그랑 팔레에 마련된 슈퍼마켓 풍경은 관객에게 장보기를 연상시키는 공간을 제공했다. 트위드와 운동화가 함께 등장한 상황에서 고급 의복은 특별한 행사만을 위한 옷이 아니라 소비와 이동이 이루어지는 생활 속 대상으로 제시된다.
진열대와 포장, 모델의 동선은 의상을 보는 속도를 바꾸었다. 그러나 큰 무대가 곧 좋은 의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쇼 사진을 분석할 때는 배경을 잠시 지우고 재킷의 길이, 바지와 신발 사이의 비례, 손에 든 가방의 크기를 다시 비교하는 것이 유용하다.
무대의 기억과 실제 상품의 디자인을 구분하면 무엇이 컬렉션의 성취인지 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다. 이 쇼는 일상과 사치의 관계에 관한 질문을 만들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관객 모두가 똑같이 받아들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같은 장면을 생활의 확장으로 볼 수도, 소비의 과장으로 읽을 수도 있다.

사후의 브랜드와 생전 작품을 나누어 읽기
칼 라거펠트 샤넬 역사는 2019년 2월 19일 그의 사망을 경계로 생전 작업과 이후의 계승을 구분해야 한다. 샤넬, 펜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는 서로 다른 조직과 후속 창작의 경로를 가졌다. 오늘 판매되는 상품이나 새로운 쇼를 자동으로 그의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생전 작업을 읽을 때도 검은 정장과 흰 머리, 선글라스로 이루어진 개인 이미지가 옷의 구체적인 분석을 대신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작품을 비교하는 출발점은 어느 브랜드를 위해, 어느 계절에,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가이다. 끌로에의 샤워기 드레스와 샤넬의 쇼, 펜디의 소재 실험은 한 사람의 경력 안에 있지만 동일한 목적의 작품은 아니다.
그의 영향은 과거의 하우스가 가진 기호를 계속 바꾸어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데서 찾을 수 있다. 동시에 그 변화가 디자이너 한 사람의 속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시제품을 만들고 조정한 여러 제작자의 노동 위에 놓였다는 사실도 함께 남겨야 한다.
주요 연표
- 1933 — 함부르크 출생
- 1954 — 코트 디자인 경연 수상
- 1965 — 펜디와 협업 시작
- 1983 — 샤넬에서 컬렉션 발표
- 1984 — 개인 브랜드 출범
- 2019 — 2월 19일 사망
참고 자료
- The Met — Karl Lagerfeld: A Line of Beauty, visiting guide
- KARL LAGERFELD — The Real Karl
- Vogue — Shopping for vintage Karl Lagerfeld
- The Met — Chloé, Buée, 1983–84
- Fendi — Fur atelier
- Vogue — Chanel Fall 2014 ready-to-wear
- TIME — Karl Lagerfeld obitu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