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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슬리먼: 생로랑과 음악을 입는 몸

좁은 재킷이 바꾼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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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슬리먼, 2015년.
에디 슬리먼, 2015년.Yann Rzepka · CC BY-SA 4.0. Resized for web delivery. · 출처 · 이용 조건

좁은 재킷이 바꾼 무대

검은 재킷의 폭이 좁아지면 셔츠와 넥타이, 바지의 관계도 함께 달라진다. 에디 슬리먼 생로랑 역사는 특정 제품 하나보다 몸 전체를 길고 가늘게 보이게 하는 비율의 연결로 읽을 수 있다. 테일러링은 몸에 맞춰 재단하고 형태를 만드는 기술을 뜻한다. 여기서는 전통적인 정장의 권위가 무대에 선 젊은 인물의 긴장과 만난다. 같은 검은색이라도 옷감의 표면과 어깨의 각도에 따라 인상은 달라진다.

그가 좁은 바지나 양성적인 옷차림을 처음 발명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음악 문화와 거리에는 이미 여러 선례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 이미지를 큰 하우스의 제작과 광고 체계 안에서 지속적으로 조직했다는 점이다. 독자가 살펴볼 질문도 누가 가장 먼저 입었는가에만 머물지 않는다. 왜 이 재킷에는 이 바지와 신발이 놓이고, 왜 특정한 자세의 인물이 그 옷을 보여주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미술사와 작업 현장의 연결

1968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에콜 뒤 루브르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모마의 전시 기록은 재단 교육도 언급한다. 초기에는 장자크 피카르의 보조로 패션과 이미지 제작 현장에서 일했고 이브 생 로랑의 남성복을 거쳐 2000년 디올의 남성복을 맡았다. 에디 슬리먼 생로랑 역사는 따라서 단일 브랜드 안의 승진 과정이 아니라 여러 조직을 오가며 자신의 시각을 구체화한 경로다.

미술사를 공부했다는 사실만으로 특정한 작품의 심리적 동기를 추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확인되는 작업을 연결하는 편이 생산적이다. 의복을 만드는 일은 몸의 입체를 다루고 사진은 그 결과를 한 평면에 담는다. 재단과 화면의 구도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비율을 결정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경력에서 두 매체가 나란히 존재하는 이유를 작품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다. 개인의 취향을 곧바로 특정 문화 전체의 대표성으로 넓혀 해석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디올 옴므의 2001년 제안

2001년 가을·겨울 디올 옴므의 솔리테르는 초기의 중요한 기준점이다. 에디 슬리먼 생로랑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정교한 테일러링과 장식이 대립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리처드 아베돈이 촬영한 당시 광고의 재킷에는 꽃 장식이 놓였다. 날카롭게 정리된 선 옆의 작은 부피는 의상을 부드럽게 만들면서도 주변의 긴 선을 더 강조한다. 장식의 크기보다 위치가 중요한 사례다.

이 광고의 인상을 디자이너 혼자 만든 결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모델의 자세와 사진가가 선택한 빛, 재킷의 실제 형태가 함께 작용한다. 흑백 이미지에서는 색상 차이 대신 밝기와 질감의 차이가 더욱 중요해진다. 검은 면의 경계가 어디에서 끊기는지를 보면 옷의 구성을 읽을 수 있다. 반대로 하나의 광고 이미지만으로 전체 컬렉션의 착용감이나 다양한 소비자의 경험을 대표할 수는 없다. 대표 이미지는 출발점이지 모든 설명의 결론은 아니다.

생로랑의 2013년, 찬사와 불편함

2012년 다시 생로랑에 합류한 뒤 2013년 가을·겨울 여성복에서 체크 셔츠와 짧은 드레스, 거친 부츠가 함께 제시되었다. 에디 슬리먼 생로랑 역사에서 이 컬렉션은 음악 문화의 익숙한 옷차림을 럭셔리 런웨이에 놓았다는 점에서 논쟁적이었다. 당시 보그의 팀 블랭크스는 새로움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성공담만을 정리하면 이런 반응이 왜 생겼는지를 놓치게 된다.

낡아 보이는 조합을 정교하게 제작할 때 생기는 긴장은 옷의 형태와 시장의 관계에 있다. 체크무늬 셔츠가 실제로 오래된 물건인지, 새로 만든 고가 제품인지는 사진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겹쳐 입는 방식이 비슷해도 제작 조건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이 작업을 그대로 거리의 복장이라고 부르거나 반대로 하우스가 그 문화를 발명했다고 설명하는 것은 모두 부정확하다. 기존의 문화적 기호를 어떤 맥락으로 옮겼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셀린느에서 다시 나타난 밤

2016년 생로랑을 떠난 그는 2018년 셀린느에 합류했다. 2019년 봄·여름 첫 쇼에는 짧고 반짝이는 드레스와 좁은 슈트가 등장했고 남성복이 새롭게 제시되었다. 에디 슬리먼 생로랑 역사와 이어서 보면 브랜드가 바뀌어도 음악 문화와 밤의 옷차림이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전임자의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쇼의 남성 모델이 입은 옷은 여성에게도 판매된다는 당시 설명은 상품 분류와 실제 착용자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옷의 명칭과 몸에 맞는 치수는 같은 문제가 아니다. 성별 구분을 넘어 입을 수 있다고 해서 모든 체형에 같은 방식으로 맞는 것도 아니다. 길이와 폭, 어깨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강한 이미지가 매력적인 이유를 논의하면서도 그 이미지 안에 포함되는 몸과 포함되지 않는 몸을 함께 보는 것이 이 경력을 읽는 균형 잡힌 방법이다.

사진은 옷의 부록인가

2004년 모마 피에스원의 베를린 전시는 사진 작업이 디자인 경력의 휴식 시간에만 이루어진 취미가 아님을 보여준다. 에디 슬리먼 생로랑 역사에서 이미지는 옷을 홍보하는 수단이면서 별도의 관찰 방식이다. 전시에서는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이 큰 입방체의 면에 투사되었다. 한 장을 손에 들고 보는 것과 공간을 걸으며 여러 면을 보는 것은 서로 다른 경험이다.

이 전시는 클라우스 비젠바흐의 기획과 베를린 레지던시, 출판의 맥락을 함께 갖는다. 사진가의 이름만 남기기보다 이미지가 전시와 책으로 전달되는 협업 구조도 기록해야 한다. 사진 작업 속 몸과 공간을 옷의 광고와 비교하면 어떤 요소가 계속되는지 검토할 수 있다. 다만 사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특정 하위문화의 전형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기록된 한 장면은 그 사람이 살아가는 전체 생활보다 좁다.

퇴임 이후에도 남는 이미지

2024년 10월 셀린느 퇴임이 발표되었다. 2026년 10월 10일 확인한 비욘드 노이즈의 화보에는 사진가로 그의 이름과 패션을 담당한 사라 리처드슨의 이름이 함께 실려 있다. 에디 슬리먼 생로랑 역사를 현재까지 정리할 때는 이러한 사진 작업과 과거의 하우스 직책을 구별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차기 부임설을 현재의 직책으로 옮겨 적을 수는 없다.

이 경력에서 테일러링과 이미지가 만나는 방식은 독자에게 구체적인 관찰법을 남긴다. 재킷만 따로 보는 대신 넥타이의 폭과 셔츠의 노출, 신발의 끝까지 연결해 보자. 그런 다음 같은 옷이 조명과 자세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면 된다. 비판도 같은 수준에서 가능하다. 날씬한 외곽선의 효과를 인정하는 것과 그 몸을 유일한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판단이다. 그의 영향은 하나의 슈트 형태에만 있지 않고 옷을 고르고 보여주는 전체 과정의 일관성을 질문하게 한다는 데에도 있다.

주요 연표

  • 1968 — 파리 출생
  • 2000 — 디올 남성복 합류
  • 2004 — 모마 피에스원 베를린 전시
  • 2012–2016 — 생로랑 크리에이티브 및 이미지 디렉터
  • 2018–2024 — 셀린느 디자인과 이미지 지휘

참고 자료

  1. Jay McCauley Bowstead — Hedi Slimane and the reinvention of menswear (PDF)
  2. MoMA — Hedi Slimane: Berlin
  3. Vogue Italia — Hedi Slimane biography
  4. Vogue — Saint Laurent Fall 2013
  5. Kering — Hedi Slimane departure, 2016
  6. Vogue — Celine Spring 2019
  7. Vogue — Hedi Slimane exits Celine
  8. Beyond Noise — Hedi Slimane and Sarah Richardson, cred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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