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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몰리뉴: 단순한 선 안의 재단

벨벳 드레스와 수트, 전시 의복에서 읽는 형태의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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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몰리뉴의 초상.
에드워드 몰리뉴의 초상.James Abbe · Public domain. Web-sized copy; source framing retained. · 출처 · 이용 조건

벨벳을 따라 내려가는 선

1935년 가을겨울의 초록색 벨벳 드레스는 에드워드 몰리뉴 역사를 장식보다 재단의 문제로 읽게 한다. 교토복식문화연구재단 소장품은 몸통에 가깝게 내려오다가 아래에서 넓어지는 머메이드 실루엣을 갖는다. 머메이드는 인어의 꼬리처럼 치맛단이 퍼지는 형태를 뜻한다. 천을 직물의 결에 비스듬하게 놓는 바이어스 재단이 몸의 곡선을 따라 흐르는 힘을 만들고, 봉제선에 모은 주름이 흐름을 조절한다. 벨벳의 광택은 몸의 방향에 따라 바뀌어 같은 초록 안에서도 밝고 어두운 면을 만든다. 옷에 따로 그림을 얹지 않아도 표면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1920년대의 짧고 비교적 직선적인 옷에서 길어진 1930년대 저녁 옷으로 넘어가는 변화를, 이 한 벌의 길이와 밀착 정도에서 볼 수 있다. 이 글의 질문은 단순한 외곽 안에 얼마나 정교한 제작이 숨어 있는가이다.

그림에서 출발한 재단실

에드워드 헨리 몰리뉴는 1891년에 태어났다. 미술을 공부한 뒤 패션 드로잉으로 일을 시작했고, 1911년 루실의 디자인 공모전에서 입상해 스케치 담당자로 채용되었다. 에드워드 몰리뉴 역사의 첫 직장은 감정적인 이름을 붙인 드레스와 모델의 등장으로 옷을 알리던 국제적인 하우스였다. 이후의 절제된 옷은 화려한 패션을 전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의 선택이 아니었다. 1914년 군에 입대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한쪽 눈을 잃었다. 캡틴이라는 호칭은 군 경력에서 왔다. 전쟁 뒤 파리로 이동해 1919년 자신의 하우스를 열었다. 그림을 통해 전체 모습을 제안하던 일은 고객의 몸과 직물을 다루는 조직의 운영으로 넓어졌다. 파리에서 시작한 사업은 런던, 몬테카를로, 칸과 비아리츠의 고객을 만나는 지점들로 발전했다. 서로 다른 도시의 사교와 휴양 생활이 하나의 하우스 안에서 연결되었다.

같은 계절, 다른 벨벳

파리 갈리에라미술관의 1935~1936년 가을겨울 파란색 저녁 드레스는 에드워드 몰리뉴 역사에서 같은 소재가 얼마나 다른 선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 준다. 둥근 목선 아래로 내려오는 긴 옷에 옆 허리의 주름과 뒤로 끌리는 트레인이 결합된다. 소매에는 트임이 있으며 매우 긴 두 갈래의 패널로 이어진다. 패널은 옷에서 길게 뻗어나온 천의 부분이다. 초록색 작품이 몸 아래쪽으로 넓어지는 선을 강조한다면, 이 작품은 팔 주변에서도 긴 세로선을 만든다. 걷거나 팔을 움직일 때 긴 부분은 몸과 다른 속도로 따라온다. 파란 벨벳의 드레이프, 즉 천이 늘어지고 접히는 모습은 고정된 사진보다 움직임을 전제로 한다. 두 작품 모두 파리의 같은 주소를 단 라벨을 지닌다. 하나의 작업실에서 형태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고객의 다른 움직임을 설계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1939년의 저녁과 고객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윈터할터 저녁 드레스는 에드워드 몰리뉴 역사에 착용 장면이 확인되는 자료다. 1939~1940년 가을겨울 작품으로 실크와 금속사를 사용했으며, 폴루이 베예르 부인이 1939년 레이디 멘들의 일흔다섯 번째 생일 파티에서 입었다. 베예르 부부가 연 그 행사에서 옷은 개인의 취향과 사교적인 역할을 동시에 드러냈다. 작품명은 초상화가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지만, 작품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확인되는 직물과 착용 기록이다. 금속사는 빛을 받는 부분을 만들고 실크는 그 주변의 부드러운 면을 형성한다. 앞선 벨벳 작품과 비교하면 단순함이 항상 무광택이나 장식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우스는 고객이 등장할 장소에 따라 빛과 재료의 강도를 달리했다. 주문복에서 고객은 완성된 옷을 나중에 구입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옷이 사용될 상황을 구체화하는 참여자였다.

후배에게 이어진 작업의 기준

피에르 발망은 1934년부터 1938년까지 이 하우스에서 보조 디자이너로 일했다. 에드워드 몰리뉴 역사는 따라서 한 사람의 작품 목록이면서 다음 세대가 배운 작업 환경의 역사이기도 하다. 발망은 이후 뤼시앵 를롱을 거쳐 자신의 하우스를 세웠다. 몰리뉴의 테일러드 수트와 주름치마, 저녁 옷은 서로 다른 용도를 갖지만 전체 윤곽을 정돈한다는 기준에서 연결된다. 테일러드 수트는 재킷과 치마 또는 바지를 재단해 구성한 옷으로, 몸을 따라가는 선과 필요한 여유의 균형이 중요하다. 벨벳 드레스의 드레이프가 자연스럽게 보이려면 안쪽의 봉제와 마무리 역시 질서를 가져야 한다. 겉에서 눈에 띄는 장식이 적을수록 작은 비례 차이는 더 잘 드러난다. 스케치를 옷으로 옮기는 작업실의 경험은 이러한 차이를 판단하는 훈련이었고, 이후 발망의 경력을 이해하는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된다.

전쟁이 바꾼 재료의 조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런던에서 만든 유틸리티 의복은 에드워드 몰리뉴 역사의 또 다른 전환이다. 유틸리티 의복은 전시의 재료와 생산 제약에 맞추어 제작한 실용적인 옷을 가리킨다. 고급 사교복에서 보여 준 재료의 풍부함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제한 안에서도 형태를 정돈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이때의 과제는 저녁 파티에서 돋보이는 면적을 만드는 것과 달랐다. 천의 사용과 생산 조건이 디자인의 출발점으로 들어왔다. 테일러드 수트에서 축적한 윤곽의 조절은 이러한 문제와 연결해 읽을 수 있다. 전쟁 이후에도 사업은 이전의 모습으로 무한히 이어지지 않았다. 건강 악화와 함께 런던 하우스는 1949년, 파리 하우스는 1950년 문을 닫았고, 그는 서인도제도로 물러났다. 화려한 고객층으로 알려진 경력의 뒤에는 전쟁과 건강, 지점 운영이라는 현실적인 조건이 있었다.

기성복과 다시 시작한 그림

1964년의 스튜디오 몰리뉴는 에드워드 몰리뉴 역사에서 늦은 재출발이었다. 이번에는 고급 기성복을 중심에 두었다. 기성복은 개별 고객의 치수를 따라 한 벌씩 만드는 주문복과 달리 정해진 크기와 생산 단위로 공급되는 옷이다. 옷을 전달하는 방식이 달라졌지만 정돈된 외곽과 재료에 대한 관심은 경력을 연결하는 관점이 된다. 그는 1969년 다시 은퇴했고, 존 털리스가 스튜디오를 이어 운영하다 1977년 문을 닫았다. 본인은 1974년에 사망했다. 한편 회화는 패션 밖의 또 다른 작업이었다. 미국 국립미술관에는 1960년대의 부두와 프로방스 예배당 그림, 1953년의 중국 조각과 개를 그린 작품이 남아 있다. 옷과 그림을 같은 작품처럼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드로잉으로 시작한 사람이 말년에도 시각적인 작업을 이어 갔다는 연결은 분명하다. 남은 드레스의 드레이프를 볼 때도 먼저 전체의 선을 보고, 그 선을 만드는 작은 봉제와 재료의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면 그의 작업이 더 구체적으로 보인다.

주요 연표

  • 1891 — 출생
  • 1911 — 루실의 스케치 담당자로 입사
  • 1919 — 파리 하우스 개업
  • 1935 — 벨벳 저녁 드레스 제작
  • 1950 — 파리 하우스 폐업
  • 1964 — 스튜디오 몰리뉴 개업
  • 1969 — 은퇴
  • 1974 — 사망

참고 자료

  1. KCI — Evening dress, autumn/winter 1935
  2. National Portrait Gallery — Edward Henry Molyneux
  3. Museum of Fine Arts Houston — Edward Molyneux
  4. Paris Musées — Robe du soir, 1935–1936
  5. The Met — Winterhalter
  6. The Met — Pierre Balmain, Evening dress
  7. National Gallery of Art — Captain Edward H. Molyne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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