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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실: 드레스에 감정의 이름을 붙이다

해피니스와 겹친 직물, 모델의 등장으로 읽는 루시 더프고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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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더프고든(루실)의 초상, 약 1915년.
루시 더프고든(루실)의 초상, 약 1915년.Unknown photographer · Public domain. Web-sized copy; source framing retained. · 출처 · 이용 조건

행복이라는 이름의 드레스

1916년 가을 뉴욕 컬렉션의 해피니스는 옅은 아쿠아색 디너 드레스다. 루실 역사는 이처럼 옷에 감정의 이름을 붙이는 행위에서 특별한 방향을 얻는다.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품은 후프로 부피를 만든 치마를 뒤로 걷어 실크와 레이스, 리본이 어우러진 아래층을 드러낸다. 후프는 치마의 폭을 지탱하는 고리형 구조다. 얇은 재료가 우연히 부푼 것이 아니라 지지대와 겹침이 함께 풍성함을 만든다. 18세기 옷의 기억을 불러오면서도 1916년 사교의 옷장에 놓인 작품이다. 행복이라는 말이 실제 착용자의 감정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매자가 옷을 상상하는 방향을 제안한다. 옷의 번호를 기억하는 것과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다르다. 재료의 촉감과 색, 입을 장소에 대한 기대가 하나의 짧은 말에 묶인다. 여기서 디자인은 몸에 맞는 물건을 만드는 일뿐 아니라 그 물건을 통해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제시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루시가 루실이 되기까지

루시 크리스티아나 서덜랜드는 1863년 런던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성장했고, 루실이라는 직업 이름으로 알려졌다. 루실 역사의 초기에는 자신과 동생 엘리너의 옷을 만들던 경험이 있다. 첫 결혼이 끝난 뒤 딸과 자신의 생계를 위해 런던에서 주문복 일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거대한 조직이나 정규 학교의 이름으로 출발한 경력이 아니었다. 1890년대 전반 메종 루실이라는 상점으로 발전했고, 1903년에는 루실 리미티드가 되었다. 초기 개업 연도는 기관에 따라 1893년 또는 1894년으로 소개된다. 1900년 코즈모 더프고든과 결혼한 뒤 얻은 레이디 더프고든이라는 호칭도 자료에 함께 쓰인다. 개인 이름과 상표가 여러 방식으로 등장하지만 서로 다른 디자이너를 뜻하지 않는다. 초기 티가운은 가까운 사람을 만나는 실내에서 입는 비교적 느슨한 옷이었다. 티가운 고객마다 다른 인상을 고려하려는 작업이, 사업의 확장과 함께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이름과 이미지의 체계로 바뀌었다.

팔과 허리를 다시 연결하다

교토복식문화연구재단이 소장한 약 1910년 드레스는 루실 역사에서 다른 문화의 옷을 해석한 사례다. 별도로 둥글게 판 진동이 없는 기모노 소매와 오비를 연상시키는 띠가 핵심이다. 진동은 팔을 끼우는 소매와 몸판의 연결 부위를 말한다. 이 부분의 구조가 달라지면 팔을 움직일 때 천이 모이는 위치도 달라진다. 보라색 실크 벨벳은 금빛 거즈 바탕에서 구름이나 안개 같은 무늬를 이루고, 갈색 치마 위로 보라색 오간디가 겹친다. 가슴의 금색 레이스와 양귀비 코르사주가 촉감의 차이를 더한다. 기모노 소매는 단순한 이국적 무늬가 아니라 옷의 선을 만드는 방식에 관여한다. 그러나 일본 의복을 그대로 옮긴 것도 아니다. 서양식 드레스와 허리 장식, 당대의 일본 이미지가 함께 구성된 옷이다. 뉴욕 지점 개업 무렵의 컬렉션과 연관되는 이 작품은 마거릿 오거스타 데일리 브라운이 입었으며, 대서양을 건너던 고급 패션의 고객층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하루의 다른 장면을 위한 수트

1910~1912년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수트는 루실 역사를 부드러운 실내복만으로 설명할 수 없게 한다. 울 바탕에 수타슈 브레이드, 실크, 새틴 리본과 금색 끈이 결합되어 있다. 수타슈는 납작한 장식 끈으로 표면에 선을 그리듯 배치할 수 있는 재료다. 아래가 좁아지는 치마와 그 위의 약간 부푼 형태는 당시의 호블 실루엣을 이룬다. 외출복의 윤곽 안에서도 서로 다른 재료를 섞는 방식은 이어진다. 한편 1916년 신문에 광고된 아이디얼 오피스 가운은 발목 길이의 단순한 점퍼 드레스로 직장 여성과 속기사를 고객으로 상정했다. 장식적인 저녁 옷과 이 실용적인 제안은 같은 사업 안에 공존했다. 하우스가 판매한 것은 하나의 여성상만이 아니라 하루의 여러 역할에 대응하는 옷이었다. 수트의 단정한 외곽과 장식의 세부를 비교하면 낭만적이라는 수식어로 지워지는 작업 범위를 되찾을 수 있다.

겹쳐서 만드는 색

1918년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소장 드레스는 루실 역사에서 겹침을 통해 색을 만드는 방식을 보여 준다. 어두운 망사 바깥층 아래로 밝고 어두운 색이 섞인 실크가 보이고, 층을 이룬 치마에 검은 레이스가 놓인다. 튈은 망처럼 성긴 천이며, 라메와 크레이프 시폰은 각각 반짝임과 부드러운 흐름을 더한다. 피부와 옷 사이의 거리뿐 아니라 겹과 겹 사이의 거리도 시각적인 효과를 만든다. 검은 면이 모든 것을 가리는 대신 아래의 빛을 부분적으로 통과시키므로, 색은 단일 직물의 색상표처럼 고정되지 않는다. 해피니스의 밝은 색과 이 어두운 작품은 분위기가 다르지만 표면을 여러 층으로 구성한다는 제작 방식에서 연결된다. 가슴, 허리와 치맛단에 같은 장식을 반복하지 않고 재료의 밀도를 달리하면 시선이 머무는 위치도 바뀐다. 사진에서 한 가지 색으로 보이는 부분도 실제로는 여러 소재의 합성이라는 점이 이 옷을 읽는 핵심이다.

모델과 고객, 네 도시의 무대

1915년까지 런던, 뉴욕, 파리와 시카고에 지점을 둔 규모는 루실 역사의 사업적 전환을 보여 준다. 모델의 걸음과 등장 순서를 포함한 마네킹 퍼레이드는 옷을 움직이는 장면으로 보여 주었다. 무대와 사교계의 경계도 가까웠다.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 실내 장식가 엘시 드 울프, 작가 엘리너 글린 등 서로 다른 활동을 하는 고객이 있었고, 지그펠드 폴리스 의상으로 공연의 세계에도 참여했다. 고객의 개성과 옷의 이미지가 서로를 알리는 관계였다. 이름 붙인 드레스를 모델이 입고 등장하면 종이 위 설명과 실제 천의 움직임이 만난다. 이런 장면은 오늘날의 쇼와 닮았지만, 한 사람의 단독 발명으로 모든 발전을 설명하기보다 초기의 중요한 실천으로 볼 수 있다. 1912년 타이타닉에서 살아남은 사건과 이를 둘러싼 논란은 그의 공적인 명성에 다른 종류의 관심을 더했다. 사업의 확장은 제품뿐 아니라 디자이너 자신도 대중이 읽는 이미지로 만들었다.

이름을 빌려 주는 사업의 한계

1916~1917년 시어스와의 라이선스 사업은 루실 역사에서 상표가 옷의 제작 현장 밖으로 나가는 순간이다. 이미 맺은 다른 계약과 충돌하면서 소송으로 이어졌고, 이름의 상업적 사용이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문제를 드러냈다. 직접 고객을 만나 만들던 주문복과 상표를 빌려 주는 사업은 같은 방식으로 관리되지 않는다. 1923년 무렵에는 본래 회사의 지분과 운영에서 벗어나 있었으며, 지점들은 각기 다른 시기에 문을 닫았다. 그는 이후 패션 글과 1932년 자서전으로 활동을 이어 가다 1935년에 사망했다. 남아 있는 옷을 보면 섬세한 천과 극적인 이름이 단순한 치장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실내복에서 저녁 옷으로 옮겨 간 겹침, 소매의 다른 연결, 실용적인 업무용 제안, 공개적인 모델의 등장이 하나의 경력을 이룬다. 그는 옷과 착용자의 개성을 연결하는 방식을 상품과 공연, 글쓰기라는 여러 형식으로 넓혔다.

주요 연표

  • 1863 — 런던 출생
  • 1890s — 메종 루실 운영 시작
  • 1903 — 루실 리미티드 법인화
  • 1910 — 뉴욕 지점 개업
  • 1915 — 시카고 지점 개업
  • 1923 — 원래 회사 운영에서 이탈한 상태
  • 1935 — 사망

참고 자료

  1. Philadelphia Museum — Happiness, fall 1916
  2. ASU FIDM Museum — Lucile
  3. Museum at FIT — Designing the It Girl
  4. KCI — Evening dress c.1910
  5. The Met — Suit 1910–1912
  6. LACMA — Woman’s Dress 1918
  7. Museum at FIT — Lucile, Chic Chic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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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파캥 · Desig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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