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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파캥: 옷을 만드는 일과 보이게 하는 일

1912년 작품과 두 도시의 라벨로 읽는 디자인과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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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파캥의 초상.
잔 파캥의 초상.André Taponier , Paris · Public domain. Web-sized copy; source framing retained. · 출처 · 이용 조건

오페라에 나타난 옷

1912년 오페라 코트의 옆에는 장밋빛 술이 늘어져 있다. 멀리서 시선을 끌고 가까이에서는 자수와 비즈의 정교함을 보게 하는 구성이다. 잔 파캥 역사를 이 겉옷에서 시작하면, 옷을 만드는 일과 보이게 하는 일이 분리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파캥이 모델들을 오페라와 경마장에 보내 옷을 알렸다고 설명한다. 모델이 서 있고 걷는 공적인 장소 자체가 전시 공간이 된 셈이다. 코트의 아래쪽은 당시의 좁은 호블 실루엣과 관련된다. 호블은 보폭을 좁히는 듯한 치마의 형태를 가리킨다. 장식의 풍부함만 보면 움직임의 제약을 놓치기 쉽고, 실용성만 기준으로 삼으면 공연장이라는 상황을 놓치기 쉽다. 이 옷은 사교적 등장과 신체의 형태가 어떻게 맞물리는지 묻는다. 박물관이 제시하는 푸아레나 발레 뤼스와의 시각적 연관은 비교의 단서이며, 모든 요소를 직접 빌렸다는 계약이나 제작 기록을 뜻하지는 않는다.

여성 경영자를 지우지 않는 시작

1869년에 태어난 잔은 1890년대 초 파리의 뤼 드 라 페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하우스를 이끌었다. 잔 파캥 역사에서 창립 연도는 V&A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1891년을 기준으로 삼는다. 갈리에라의 한 소장품 소개에는 1890년으로 적혀 있어 그 차이도 남겨 둔다. 이지도르 파캥과의 사업 관계는 개업의 배경이지만, 그것으로 디자인과 운영에서 잔이 맡은 일을 없앨 수는 없다. V&A는 그를 초기 여성 쿠튀르 경영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설명하면서, 최초의 여성이라는 익숙한 주장에는 반례를 제시한다. 마들렌 라페리에르 같은 앞선 인물을 지우면 여성의 기여를 강조하려다 오히려 역사를 좁히게 된다. 확인한 기관 자료로 어린 시절의 수업이나 첫 작업실의 모든 과정을 복원하기는 어렵다. 대신 1897년 겨울부터 이어지는 디자인 기록이 실제 작업을 추적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화려한 명성보다 남은 도안과 의복을 함께 읽는 편이 이 경력을 더 잘 보여 준다.

18세기의 옷을 1912년의 표면으로

1912년 봄여름 이브닝 드레스는 잔 파캥 역사에서 과거를 다시 만드는 방식을 드러낸다. 초록 실크 패널이 몸통을 감싸 교차하고, 면으로 만든 피슈와 앞치마 형태에는 체인 스티치가 놓인다. 피슈는 가슴과 어깨에 두르는 천이며, 체인 스티치는 사슬처럼 연결된 바늘땀이다. 18세기 목동풍 옷과 폴로네즈의 겹친 치마를 떠올리게 하지만 당시 옷을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다. 큰 덩어리를 단순화하고 장식의 선을 새롭게 정리했다. 스텐실로 찍은 무늬의 일부 가장자리에는 광택 있는 견사가 더해져 있다. 인쇄된 평면과 바늘땀의 작은 높이가 만나는 지점이다. 자수는 무늬를 모두 채우는 대신 특정 부분을 강조하고, 빛을 받는 선을 선택적으로 만든다. 이브닝 드레스의 역사성을 판단할 때에는 오래된 장식이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어느 구조가 남고 어느 구조가 바뀌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소재와 장식의 결합이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실질적으로 만든다.

보아시의 색과 비대칭

베를린 장식미술관의 보아시는 같은 1912년 봄여름 작품이지만 다른 질문을 던진다. 잔 파캥 역사를 한 가지 색이나 한 가지 치마 모양으로 압축할 수 없는 이유다. 갈대색 초록, 분홍과 아이보리가 함께 쓰이고, 앞이 열린 튜닉 아래로 옅은 장밋빛 튈이 여러 겹 놓인다. 높게 설정한 허리의 분홍 새틴 띠는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시선을 모은다. 튜닉은 세 폭의 천으로 구성되며, 옆의 긴 두 폭이 뒤쪽 한편에서 부풀어 모이고 꽃다발이 그 부분을 잡는다. 비대칭은 무늬만의 문제가 아니라 천을 어디에 모았는지에 달린 구조다. 앞에서 보면 차분한 층처럼 읽히는 옷도 뒤쪽의 부피를 보면 다른 균형을 갖는다. 여기서 파스텔 색은 흐릿한 배경이 아니다. 서로 인접한 부드러운 색의 차이가 겹을 구분하고, 광택과 투명도의 차이가 윤곽을 보탠다. 옷을 한 장의 정면 사진으로만 보면 이런 설계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라벨에 남은 두 도시

빅토리아국립미술관의 1912년 겨울 오후 드레스는 잔 파캥 역사에서 작품과 판매 조직의 연결을 보여 준다. 라벨에는 파리 뤼 드 라 페의 주소와 런던 도버 스트리트의 주소, 계절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세계적이라는 수식어보다 더 구체적인 증거다. 실크 시폰, 벨벳과 튈, 리넨과 면 레이스라는 재료 목록은 하나의 옷 안에서도 투명도와 무게가 달라짐을 알려 준다. 얇게 비치는 면과 빛을 흡수하는 벨벳은 같은 색이라도 다르게 보인다. 각각을 어디에 배치하느냐가 몸의 중심과 주변을 나누는 방식이 된다. 오후 드레스와 이브닝 드레스는 같은 옷장에 속하더라도 만나는 사람과 시간대가 다르다. NGV는 파캥의 1910년대 테일러드 의복을 여행과 여가의 필요에 대응하는 작업으로 설명한다. 공연장용 겉옷만으로 하우스를 설명할 수 없는 까닭이다. 판매망과 다양한 생활 장면을 함께 이해해야 디자인의 범위가 보인다.

창립자가 떠난 뒤의 이름

1920년 은퇴는 잔 파캥 역사와 이후 하우스의 작업을 나누는 중요한 경계다. V&A는 디자인 책임이 조수 마들렌 왈리스에게 넘어갔다고 기록한다. 갈리에라 소장의 약 1923~1924년 오후 드레스에 달린 파캥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잔의 직접 창작을 보증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는 레사주 공방의 자수, 거울, 색색의 구슬과 실, 모피가 쓰였으며 세로로 이어지는 장식이 재단의 길이를 강조한다. 공방과 후임 디자이너의 작업을 함께 적어야 옷의 저자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구분은 사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창립자가 살아 있어도 실무에서 물러났다면 새로운 컬렉션은 다른 책임 구조 안에서 만들어진다. 특히 파캥처럼 한 이름이 여러 세대에 걸쳐 사용된 경우, 라벨의 회사명과 개인의 활동 시기를 나란히 놓아야 한다. 1936년에 잔이 사망했다는 사실과 그 뒤에도 회사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기록의 양이 보여 주는 지속성

잔 파캥 역사를 오늘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옷뿐 아니라 방대한 도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V&A의 소장 기록은 1897년 겨울에서 1953~1954년 겨울까지 이어지며, 후임자들의 작업도 포함한다. 브랜드가 워스와 합쳐진 뒤 1956년에 문을 닫은 과정 역시 개인의 은퇴와는 별개의 사건이다. 이 자료는 한 명의 천재가 단독으로 만든 이미지보다, 계절마다 의복을 제안하고 고객에게 전달했던 조직을 보여 준다. 오페라 코트의 먼 거리 효과, 18세기 장식의 변환, 보아시의 뒤쪽 부피, 두 도시가 적힌 라벨을 연결하면 디자인과 유통을 함께 보는 관점이 생긴다. 그의 기여는 과거의 형식을 활용하면서 새로운 사교와 이동의 상황에 옷을 맞춘 데 있다. 최초라는 말 하나로 업적을 줄이기보다, 서로 다른 재료와 쓰임을 조율하는 판단이 얼마나 넓은 범위에서 반복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더 정확한 평가다.

주요 연표

  • 1869 — 출생
  • 1891 — V&A와 메트가 제시하는 하우스 개업 연도
  • 1912 — 오페라 코트와 보아시 등 제작
  • 1920 — 은퇴, 마들렌 왈리스가 디자인 계승
  • 1936 — 사망
  • 1956 — 후대 파캥·워스 사업 종료

참고 자료

  1. The Met — Opera coat 1912
  2. The Met — Evening dress spring–summer 1912
  3. NGV — Afternoon dress winter 1912
  4. V&A — Paquin designs and succession
  5. Kunstgewerbemuseum — Boissy
  6. NGV — Campbell-Pretty Fashion Gift, Paquin
  7. Galliera — Afternoon dress c.1923–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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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푸아레 · Desig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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