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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ls · 051

프레야 베하 에릭슨

Freja Beha Erichsen

출생
1987-10-18
국적
덴마크

성장과 출발

프레야 베하 에릭슨은 1987년 덴마크 로스킬레에서 태어나 코펜하겐 근교에서 자랐다. 숲을 돌아다니고 자전거를 타던 어린 시절은 훗날 언론이 주목한 자유로운 인상과 연결되지만, 이를 성공의 원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영국 보그는 음악을 좋아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청소년이 패션업계에 들어온 과정을 소개했다. 화려한 무대보다 야외와 음악이 가까웠던 성장 배경은 이후 인터뷰에서도 반복해서 등장한다.[1][2]

2009년 토미 힐피거 봄 컬렉션의 프레야 베하 에릭슨
2009년 토미 힐피거 봄 컬렉션의 프레야 베하 에릭슨Ed Kavishe/fashionwirepress.com (http://www.fashionwirepress.com) · 사진 출처 · CC BY 3.0

직업으로 들어가는 문

프레야 베하 에릭슨의 입문은 덴마크 거리에서 받은 스카우트 제안에서 시작됐다. 발견 당시 나이는 자료마다 달라 여기서는 확정하지 않는다. 소속사 소개에 따르면 첫 밀라노 방문에서는 쇼를 얻지 못했지만, 다음 시즌 프라다와 미우미우의 제안이 들어왔다. 따라서 경력의 출발은 단번에 완성된 신화보다는 캐스팅의 실패와 재도전으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2005년 국제 컬렉션 진출이 확인되는 핵심 시점이다.[1][2][4]

2009년 토미 힐피거 봄 컬렉션 백스테이지의 프레야 베하 에릭슨
2009년 토미 힐피거 봄 컬렉션 백스테이지의 프레야 베하 에릭슨Ed Kavishe/fashionwirepress.com (http://www.fashionwirepress.com) · 사진 출처 · CC BY 3.0

전환점

프레야 베하 에릭슨은 2005년 미우미우 쇼의 첫 순서를 맡고 프라다와 루이 비통 무대에 서며 빠르게 이름을 알렸다. 꾸밈없는 몸짓과 중성적 스타일은 당대의 전형적인 여성 이미지와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보그의 초기 평가도 강한 소년 같은 인상과 부드러운 표정이 함께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단순한 외모의 별명보다 옷의 분위기를 바꾸는 모델의 해석 능력을 설명하는 단서다.[1][4]

2007년 뉴욕 패션 위크 브라이언트 파크의 프레야 베하 에릭슨
2007년 뉴욕 패션 위크 브라이언트 파크의 프레야 베하 에릭슨Photograph by Christopher Peterson (en:User:Sacredhands), 2007 · 사진 출처 · CC BY 3.0

대표 작업

프레야 베하 에릭슨에게 칼 라거펠트와의 협업은 중요한 장기 관계였다. DNA는 네 차례 연속 샤넬 캠페인과 라거펠트의 개인 브랜드 작업을 대표적인 성과로 소개한다. 동시에 질 샌더, 구찌, 클로에 등 서로 다른 미학의 광고에도 참여했다. 한 브랜드의 얼굴에 머물지 않고 절제된 이미지와 장식적인 의상을 오갔다는 점에서, 샤넬 캠페인은 폭넓은 작업 세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중심축으로 볼 수 있다.[1][2]

패션 행사장에서 촬영된 프레야 베하 에릭슨
패션 행사장에서 촬영된 프레야 베하 에릭슨Mette Sivebæk Knudsen from Frederiksberg, Denmark · 사진 출처 · CC BY-SA 3.0

활동의 확장

프레야 베하 에릭슨의 경력은 런웨이와 인쇄 매체가 서로 힘을 보태던 시기의 구조를 보여준다. 이탈리아·영국·프랑스 보그와 아이디, 누메로 등의 표지 및 화보가 쇼 활동과 나란히 쌓였다. 위르겐 텔러, 콜리어 쇼어, 피터 린드버그처럼 접근 방식이 다른 사진가들과 작업한 이력도 있다. 중성적 스타일은 유지되었지만 결과물은 하나의 표정으로 고정되지 않았으며, 사진가와 의상에 따라 다른 긴장과 분위기를 만들었다.[2][4]

패션 사진 속 프레야 베하 에릭슨
패션 사진 속 프레야 베하 에릭슨Ed Kavishe, Fashion Wire Press · 사진 출처 · CC BY 3.0

최근 확인된 기록

프레야 베하 에릭슨의 최근 경력을 말할 때에는 공개 기록과 추측을 구분해야 한다. 이번에 확인한 모델스닷컴 목록은 2023년 생 로랑 여름 및 겨울 광고를 싣고 있으며, 그 앞에는 2022년 로에베 광고와 생 로랑 쇼가 있다. 이후 항목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은퇴했다고 쓰지는 않는다. 2026년 9월 갱신된 덴마크 백과사전 역시 주요 작업과 수상 경력을 정리하지만 새로운 활동을 구체적으로 발표하지는 않는다.[3][4]

2010년 안나 수이 가을·겨울 런웨이의 프레야 베하 에릭슨
2010년 안나 수이 가을·겨울 런웨이의 프레야 베하 에릭슨Masaki-H · 사진 출처 · CC BY 2.0

패션사에서의 의미

프레야 베하 에릭슨의 위치는 대중적인 별명보다 구체적인 작업의 지속성에서 드러난다. 데뷔 시즌의 핵심 쇼, 다양한 보그 판의 표지, 장기적인 디자이너 협업은 한 시대의 취향이 어떻게 반복적으로 선택되었는지 보여준다. 덴마크 패션계는 두 차례의 올해의 모델상으로 그 성과를 인정했다. 이 기록에서 중성성은 개인에 대한 사생활 추측이 아니라 사진과 의상에서 관찰되는 미학이며, 후대의 모델 이미지와 비교할 수 있는 패션사의 언어다.[1][3][4]

2010년 디젤 블랙 골드 가을·겨울 런웨이의 프레야 베하 에릭슨
2010년 디젤 블랙 골드 가을·겨울 런웨이의 프레야 베하 에릭슨Masaki-H · 사진 출처 · CC BY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