ÉPOPLI

Models · 034

에바 헤르지고바

Eva Herzigová

출생
1973-03-10
국적
체코

리트비노프의 성장기

에바 헤르지고바는 1973년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리트비노프에서 태어났다. 전기기사인 아버지와 비서인 어머니 아래 성장했으며, 열여섯 살 때 프라하의 모델 선발 행사에서 파리 에이전트에게 발탁되었다. 이 시기는 1989년 중동부 유럽의 정치적 변화와 맞물린다. 훗날 그녀는 국경이 열리지 않았다면 삶의 경로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개인의 재능만으로 설명되는 발탁 이야기 뒤에는 이동의 자유와 국제 시장의 관심이 확대된 역사적 조건이 함께 있었다.[1][2]

1997년 행사에서 포즈를 취한 에바 헤르지고바
1997년 행사에서 포즈를 취한 에바 헤르지고바Georges Biard · 사진 출처 · CC BY-SA 3.0

파리로 이동한 신인 모델

에바 헤르지고바는 파리에서 촬영과 런웨이 경험을 쌓으며 국제적인 경력을 시작했다. 체코 패션계에서 발견된 신인이 서유럽의 에이전시와 잡지, 디자이너 네트워크 안으로 진입한 과정이었다. 이 이동은 단지 새로운 도시에서 사진을 찍는 일이 아니라 다른 언어와 작업 속도, 의상 표현의 관습을 익히는 일이기도 했다. 이후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주요 매체에서 인지도를 넓혔다. 그녀의 경력은 동유럽 출신 모델들이 국제 패션계에서 더 자주 등장하던 변화와 연결되지만, 출신 지역이 개인의 표현 능력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1][2]

검은 드레스를 입고 포토월 앞에 선 에바 헤르지고바
검은 드레스를 입고 포토월 앞에 선 에바 헤르지고바Michael Schilling · 사진 출처 · CC BY-SA 3.0

1994년의 광고와 대중적 돌파구

에바 헤르지고바는 1994년 원더브라 광고의 얼굴이 되면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헬로 보이스라는 문구와 함께 공개된 이미지는 잡지 독자뿐 아니라 도시의 광고판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도달했다. 원더브라 작업은 모델의 이름과 하나의 상품이 강하게 연결되는 사례로 남았다. 광고의 유명세는 이후의 이력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지만, 그것이 모델의 전체 능력이나 취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전환점이면서도 여러 다른 작업 중 하나로 놓아야 이후 수십 년의 활동을 정확하게 볼 수 있다.[2][3]

2014년 칸 영화제에 참석한 에바 헤르지고바
2014년 칸 영화제에 참석한 에바 헤르지고바Georges Biard · 사진 출처 · CC BY-SA 3.0

런웨이가 보여주는 다른 면

에바 헤르지고바는 샤넬, 베르사체, 돌체 앤 가바나 등 여러 하우스의 쇼와 캠페인에 참여했다. 보그 프랑스의 런웨이 회고는 1995년 샤넬을 비롯한 시기별 의상을 통해 광고 이미지와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쿠튀르의 구조적인 옷과 간결한 레디투웨어를 입는 방식은 각각 다른 움직임을 요구했다. 하나의 유명 광고로 기억되는 모델도 실제 작업에서는 여러 디자인 언어 사이를 계속 이동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진으로 남은 각 쇼는 브랜드의 의상을 표현하는 노동과 축적된 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4][5]

영화와 새로운 화면 경험

에바 헤르지고바는 패션 외의 화면 작업도 시도했다. 1995년 프랑스 영화 레 장주 가르디앵과 2000년 Just for the Time Being 등은 모델에서 배우로 활동 범위를 넓힌 사례다. 정지 사진에서 한순간의 감정을 전달하는 일과 영화에서 장면의 연속성을 만드는 일은 같은 작업이 아니다. 그녀의 영화 참여는 모델 이미지가 다른 매체에서 사용되는 방식과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과정을 함께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출연을 근거로 패션 경력이 끝났다고 보아서는 안 되며, 이후에도 잡지와 런웨이 활동은 계속되었다.[5]

막스마라 쇼 런웨이를 걷는 에바 헤르지고바
막스마라 쇼 런웨이를 걷는 에바 헤르지고바Christopher Macsurak · 사진 출처 · CC BY-SA 4.0

성숙한 경력과 창작에 대한 발언

에바 헤르지고바는 2025년 보그 체코슬로바키아 인터뷰에서 모델 일을 변신과 사진에 대한 관심으로 설명했다. 유명 브랜드의 무대를 걷는 것 자체보다 사진이 전달하는 감각과 표현에 더 큰 의미를 둔다고 말했다. 같은 해 보그 서밋에서는 해외에서의 성공과 지역적 배경을 논하며 체코 패션의 다음 세대와 만났다. 경력의 후반부에 축적된 경험을 새로운 창작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이 드러난다. 인터뷰의 발언은 빠르게 변하는 산업 안에서 충분히 창작할 시간과 개성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하는 자료다.[6][7]

2019년 행사에서 포즈를 취한 에바 헤르지고바
2019년 행사에서 포즈를 취한 에바 헤르지고바Jindřich Nosek (NoJin) · 사진 출처 · CC BY-SA 4.0

한 장의 광고보다 긴 역사

에바 헤르지고바는 2024년 빅토리아 시크릿 무대에 참여했고, 2025년에도 공개 인터뷰와 패션 행사에서 활동을 이어 갔다. 이는 1990년대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현재의 유일한 기록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녀의 경력은 국경이 열리던 시대의 이동, 대형 광고의 대중성, 장기적인 런웨이 작업, 사진과 창작에 대한 자기 해석을 연결한다. 이 아카이브는 2025년의 구체적인 직업 활동을 후기 근거로 삼는다. 이후의 계약이나 출연 계획을 추정하기보다 이미 남은 작업의 변화와 지속성을 살핀다.[6][8]

데이비드 간디와 재규어 XE 공개 행사에 참석한 에바 헤르지고바
데이비드 간디와 재규어 XE 공개 행사에 참석한 에바 헤르지고바Jaguar MENA · 사진 출처 · CC BY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