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윤형 역사: 색과 조각을 옷으로 잇다
조각보와 그림, 와이어가 몸을 감싸는 구조로 바뀌는 과정.
ÉPOPLI ·

색이 구조가 되는 순간
설윤형 역사에서 색은 장식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다. 서로 다른 천과 물체를 한 벌로 묶는 출발점이다. 2019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회고전 《형형색색》에는 모란과 떡살무늬, 조각보와 베갯모가 등장했다. 작은 물건의 표면에 있던 도안이 몸을 둘러싸는 면으로 커지면서 전통 문양의 쓰임도 달라진다. 이 작업을 읽는 질문은 한국적인 옷이 무엇인가보다, 익숙한 생활의 색을 어떻게 새로운 옷의 구조로 바꾸는가에 가깝다. 전통을 알아보게 하는 무늬와 실제로 움직이는 옷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치마의 주름이 닫히면 그림의 일부가 숨어들고, 몸을 돌리면 옆면의 색이 정면으로 이동한다. 작고 평평한 조각을 큰 입체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그림의 크기와 배열, 몸에 걸리는 무게를 함께 결정해야 한다. 조각보 의상은 이런 변환을 보여주는 좋은 입구다. 보자기의 사각형을 그대로 전시하는 대신 착용자의 어깨와 허리, 걸음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만난다.
천 조각에서 부티크까지
설윤형 역사의 출발점에는 전남 순천에서 자라며 접한 한복집의 천 조각이 있다. 1944년에 태어난 그는 버려지는 비단을 모으며 색과 모양을 맞추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보육원에서 일하는 동안 국제복장학원에 다녔고, 구호물자 시장에서 산 옷을 풀어 다시 만들기도 했다. 1975년에는 자신의 부티크를 열었다. 값비싼 원단을 주문해 완성된 도안을 옮기는 방식만이 그의 출발점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미 존재하는 옷의 솔기를 풀면 재단선과 천의 남은 폭이 드러난다. 이를 다른 옷으로 바꾸려면 원래의 용도와 새로운 길이를 동시에 계산해야 한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모든 작품의 원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조각을 선택하고 연결하는 일을 그가 직접 자신의 기억과 연결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1984년에는 이듬해 봄여름을 위한 파리 무대에 참여했다. 개인 부티크에서 쌓은 작업은 해외 발표와 서울의 공동 컬렉션 체계로 범위를 넓혀 갔다.
움직이는 왕실의 풍경
일월오봉도 드레스는 설윤형 역사의 대표적인 전환을 보여준다. 1996–97년 가을겨울 쇼의 피날레에 등장한 이 작품은 해와 달, 다섯 봉우리의 왕실 병풍 이미지를 넓은 드레스 자락에 펼친다. 고정된 병풍은 한 자리에서 바라보지만 옷은 관객 앞을 지나간다. 폭포와 바위의 위치가 주름에 따라 모였다가 갈라지는 효과를 생각하면, 도안을 인쇄했다는 설명만으로는 작품을 다 말하기 어렵다. 화면의 수평 구도를 둥근 치마 둘레에 옮기면서 앞면 하나보다 여러 시점이 중요해진다. 일월오봉도 드레스는 2015년 파리 장식미술관의 《Korea Now!》에도 소개되었다. 박물관 전시는 무대의 마지막 장면을 멈추고 원단과 구성 자체를 살필 기회를 만든다. 왕실 이미지를 현대 여성의 옷에 옮겼다는 의미와, 그림을 가리지 않으면서 부피를 만드는 실루엣의 문제를 함께 읽을 수 있다. 문양의 상징과 옷의 물리적 형태가 나란히 작동하는 사례다.
코트와 셔츠의 다른 표면
설윤형 역사는 큰 피날레 의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 패션을 돌아본 전시와 쇼의 보도에는 조각보 방식을 색색의 모피 코트에 적용한 작업이 기록되어 있다. 조각보 의상에서 얇은 천의 투명함을 기대하던 관객에게, 털의 두께와 방향을 가진 표면은 다른 인상을 준다. 같은 경계선도 소재가 바뀌면 더 두툼하게 보이고 색의 만남도 부드러워진다. 날렵한 형태의 양단 의상에서는 반대로 무늬가 있는 직물을 비교적 단정한 윤곽 안에 넣었다. 장식을 늘리는 대신 재료가 가진 시각적 밀도를 활용한 것이다. 이 무대의 헤어를 맡은 오민은 바람에 흐트러진 듯한 머리로 옷의 정교함과 대비를 만들었다. 2010년 봄여름 발표의 미니 드레스와 셔츠 드레스는 일상적인 길이와 여밈을 사용했고, 실크와 면, 실크 저지를 함께 탐색했다. 셔츠라는 익숙한 형식에서도 소재가 부드러워지면 몸과 옷 사이의 거리가 달라진다. 문화적 모티프와 판매 가능한 옷의 관계를 하나의 고정된 공식으로 좁히기 어려운 이유다.
실 대신 선을 엮다
와이어 직조는 설윤형 역사에서 천의 개념을 넓히는 또 다른 방식이다. 직조는 실을 서로 교차해 면을 만드는 방법인데, 그는 색이 있는 와이어를 옷의 재료로 사용했다. 2022년 《보그 코리아》의 탈을 주제로 한 화보에는 그가 만든 홀터 드레스가 등장한다. 목 쪽으로 연결되는 상체와 엮인 표면은 의복이 반드시 부드러운 천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와이어 직조의 선 사이에는 빈 공간이 남고 그 틈으로 안쪽 색과 그림자가 보인다. 표면과 구조를 따로 분리하기 어려운 옷이다. 2016년 같은 잡지의 아카이브 화보에서는 와이어 스커트 위에 민화 스커트를 겹치고, 소매를 연결한 녹색 튜브톱과 붉은 치마를 배치했다. 튜브톱은 끈 없이 가슴을 감싸는 형태로, 넓은 치마와 만나 상하 비례를 분명하게 만든다. 이는 당시 새 시즌의 발표라기보다 보관된 작품을 새로운 모델과 촬영 안에서 다시 읽은 장면이다. 옷의 제작 시기와 사진이 발표된 시기를 나누면 아카이브가 이후의 이미지 문화에 참여하는 과정도 보인다.
함께 만든 무대와 전시
설윤형 역사에는 옷을 보여줄 공동의 장소를 만드는 활동도 포함된다. 그는 동료들과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인 SFAA를 꾸리고 1990년 호텔에서 컬렉션을 열었던 경험을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개인의 이름으로 제작한 옷을 함께 발표하는 방식은 관객과 비평가를 만나는 통로였다. 훗날 2019년 회고전은 아트디렉터 서영희의 구성으로 다시 다른 협업을 만들었다. 디자이너의 작품을 연대순으로만 배치하기보다 수놓고 잇고 엮는 행위에 따라 살필 수 있게 한 것이다. 딸이자 별개의 브랜드 레쥬렉션을 이끄는 이주영은 의상 준비를 도왔고, 김바다는 영상 음악을 맡았다. 옷과 전시 공간, 소리의 역할을 구분하면 협업의 구체적인 내용도 드러난다. 화보 역시 촬영자와 스타일리스트, 모델의 선택에 따라 같은 옷의 읽는 방향이 달라진다. 거대한 스커트를 전신으로 보여줄지, 엮인 선을 가까이 보여줄지에 따라 구조와 이미지 중 어느 쪽이 먼저 보이는지가 바뀐다.
남겨진 옷을 다시 읽기
2026년 10월 자료 확인 시점에서 설윤형 역사는 계속 새 컬렉션을 발표하는 경력으로 단순화할 수 없다. 그는 2019년 인터뷰에서 정기적인 신작 발표보다 후배들의 무대를 지켜보는 활동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2024년 9월 카루소와 빅팍의 합동 쇼에 참석한 모습은 이런 역할이 실제 패션 현장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 확인한 최근 공개 활동은 그 참석 기록이며, 이후의 새 직책이나 시즌 발표를 덧붙이지 않는다. 작품을 오늘 다시 볼 때는 한국적인 문양의 종류만 찾기보다 그것을 어디에 놓았는지 살피면 좋다. 큰 치마에 펼친 그림, 두꺼운 코트에 이어 붙인 색, 가느다란 선으로 엮은 상체는 서로 다른 제작 문제를 푼다. 옷의 겉모습을 하나의 민족적 이미지로 묶기보다 각 소재의 성질과 몸의 움직임을 살피는 편이 작업의 폭을 더 잘 드러낸다. 남겨진 드레스와 화보, 전시 기록은 이처럼 제작과 재해석이 이어지는 여러 장면을 함께 보여준다.
주요 연표
- 1944 — 출생
- 1975 — 설윤형 부티크 설립
- 1984 — 1985년 봄여름 파리 발표
- 1990 — SFAA 공동 컬렉션
- 1996–97 — 일월오봉도 드레스
- 2015 — Korea Now! 전시
- 2019 — DDP 형형색색 회고전
- 2024 — 카루소·빅팍 합동 쇼 참석
참고 자료
- Seoul Design Foundation: 2019 annual report (PDF)
- JoongAng Ilbo: interview and archive, 2019
- DER SPIEGEL: Sul Yun Hyoung profile (birth year)
- DDP: designer chronology
- Musée des Arts Décoratifs: Korea Now!
- Designers Look Back to See the Future
- Seoul Fashion Showcase Starts Next Week
- Vogue Korea: Mode Moments Chapter Three
- Vogue Korea: Behind the Mask
- Korea JoongAng Daily: interview, 2019
- JoongAng Ilbo: Caruso and Big Park,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