ÉPOPLI

존 갈리아노: 디올과 옷으로 만드는 인물

역사적 형태, 공방의 구조와 무대의 인물을 함께 읽다.

ÉPOPLI ·

존 갈리아노의 초상.
존 갈리아노의 초상.SALLIANCE · CC BY 3.0. Web-sized copy; source framing retained. · 출처 · 이용 조건

허리의 곡선이 이야기를 만드는 수트

1997년 가을겨울 디올 수트는 존 갈리아노 디올 역사를 읽는 구체적인 출발점이다. 교토복식문화연구재단의 소장품은 회색 울 트위드 재킷과 긴 치마, 서른다섯 개 고리가 이어진 초커로 구성된다. 높은 칼라와 작은 허리, 뒤로 밀려 나오는 엉덩이의 곡선은 몸의 비례를 일상적인 수트와 다르게 만든다. 재킷 밑단에는 패드가 들어 있어 이 곡선이 천의 자연스러운 처짐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창립자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선을 그대로 복사한 옷이라기보다 그 선이 몸을 조형하는 힘을 확대해서 보여 주는 작업이다. 여기서 묻게 되는 것은 과거를 얼마나 충실하게 재현했는가가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형태를 어디까지 바꿔야 새로운 인물이 보이는가이다. 그의 쇼에서 이야기는 옷을 설명하는 배경이면서 재단과 비례를 결정하는 도구였다.

런던의 학생이 선택한 과거

1960년 지브롤터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성장한 존 갈리아노 디올 역사의 주인공은 세인트 마틴스에서 패션을 공부했다. 1984년 졸업 컬렉션 레 앵크루아야블은 프랑스혁명 뒤의 과장된 옷차림을 당시 런던 클럽 문화와 연결했다. 남녀 여덟 가지 실루엣은 찢어지고 뒤틀린 듯한 비례와 장식을 통해 과거의 옷을 현재의 태도로 바꾸었다. 졸업 작품이 브라운스에 판매된 뒤 자신의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독립 사업의 자금 문제는 반복됐다. 1994년 가을겨울 컬렉션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후원자 상 슐럼버제의 저택에서 발표한 짧은 실크 드레스는 더블브레스트 재킷처럼 여미는 몸판과 기모노를 떠올리게 하는 넓은 소매를 결합했다. 몸에 붙는 부분과 펼쳐지는 부분의 차이는 여러 시대의 이미지를 한 벌 안에 긴장감 있게 놓았다. 이 작업에서 역사 자료는 완성된 정답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조합의 재료였다.

다른 하우스의 공방을 맡는다는 것

존 갈리아노 디올 역사는 1995년 지방시 임명과 1996년 디올 합류를 구분하면서 이어진다. 디올의 첫 쿠튀르 컬렉션은 1997년 1월에 발표됐다. 쿠튀르는 고객을 위해 공방에서 정교하게 제작하는 고급 맞춤복을 뜻한다. 독립 라벨에서 옷과 후원자를 찾아야 했던 디자이너가 기존 하우스의 기술과 역사, 조직을 활용하는 위치로 옮겨 간 것이다. 그러나 공방의 자원이 많아졌다고 작업이 단순해진 것은 아니다. 이미 알려진 이름의 특징과 자신의 해석을 동시에 보여 주어야 했다. 1997년 수트에서는 좁은 허리와 엉덩이의 부피를 과장해 창립자의 유산을 알아볼 수 있게 하면서도 새롭게 낯설게 만들었다. 이 옷의 긴 치마와 목을 감싸는 장식은 착용자의 자세와 걸음까지 바꾼다. 단지 과거의 디자인에 현대적인 소재를 더한 것이 아니라, 옷이 만들어 내는 인물의 행동과 장면을 다시 설계한 셈이다.

기술과 문화적 차용을 함께 보다

1996~1997년 자신의 라벨에서 낸 레이저 커팅 스웨이드 드레스는 존 갈리아노 디올 역사를 더 복잡하게 읽게 한다. 작은 구멍과 절개를 낸 가죽은 직물처럼 몸을 따라 움직이며 과거의 부드러운 이브닝드레스와 다른 재료를 연결한다. 바이어스 재단은 천의 결을 비스듬히 잘라 유연하게 떨어지도록 하는 방식인데, 이 옷의 효과는 그러한 유동성을 가죽에서 찾는 시도로 비교할 수 있다. 동시에 컬렉션은 여러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의 요소를 섞어 사용했다. FIT의 연구 글은 이를 문화적 전유의 사례로 지적한다. 기술적인 성취가 자료를 가져온 공동체의 맥락을 자동으로 보존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늘 작품을 읽을 때에는 어떻게 만들었는가와 무엇을 누구에게서 가져왔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원주민 문화를 하나의 막연한 과거로 취급하면 현재에도 살아 있는 사람들과 전통의 차이가 지워질 수 있다.

2011년의 단절을 지우지 않기

존 갈리아노 디올 역사에서 2011년은 미학적인 방향 전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단절이다. 반유대주의와 인종차별적 언행이 공개됐고 그는 디올과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에서 해임됐다. 파리 법원에서는 출신과 인종, 종교 등에 근거한 공개 모욕으로 유죄 판단을 받았다. 이후 중독 치료와 사과가 있었지만 이것을 한 번의 아름다운 컬렉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이야기로 바꿀 수는 없다. 그의 제작 능력에 대한 평가와 발언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한 책임은 서로 다른 질문이다. 2014년 메종 마르지엘라의 창작 책임을 맡으며 작업을 재개했고, 그곳에서의 활동은 2024년에 끝났다. 창립자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익명성과 해체의 언어를 이어받되 자신이 잘하는 인물과 장면의 서사를 더했다. 같은 사람의 경력을 기록하더라도 각 하우스와 그 조직, 시기별 역할은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2024년, 옷과 얼굴이 하나의 장면이 되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2024년 아티자널 쇼는 존 갈리아노 디올 역사를 넘어 후기 작업을 보여 준다. 브랜드는 브라사이의 밤 풍경 사진을 참고해 파리의 센강 주변을 상상했다고 설명했다. 몸의 윤곽을 바꾸는 의상과 모델의 움직임, 어두운 공간이 하나의 인물을 만들었다. 팻 맥그래스와 팀은 얼굴을 도자기나 유리처럼 반사하는 표면으로 바꾸었다. 가늘게 그린 눈썹과 볼 중심의 색, 빛나는 피부는 화장이라는 별도 장식이 아니라 옷의 낯선 비례와 연결됐다. 이런 결과를 디자이너 혼자 만든 이미지라고 부르면 협업의 실제가 사라진다. 공방이 형태와 질감을 만들고 메이크업 팀이 얼굴의 표면을 설계하며, 모델이 그 인물의 속도를 보여 준다. 재단은 옷 안에서 끝나지 않고 몸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로 이어졌다. 관객이 보는 것은 여러 전문 기술이 같은 장면을 향해 조정된 결과였다.

2026년의 작업과 남아 있는 질문

2026년 10월 확인 시점의 존 갈리아노 디올 역사는 현재 디올을 맡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자라와 두 해의 창작 협업을 발표했고 첫 컬렉션이 10월 공개됐다. 자라의 과거 옷을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는 프로젝트로, 기존 하우스의 자신의 작품을 재판매하는 작업과는 구별된다. 한편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7월 발표했던 2027년 전시는 8월 31일 공식적으로 예정대로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앞선 발표만 읽고 아직 개최 예정이라고 쓰면 현재 상황을 놓친다. 이처럼 그의 경력은 창작과 제도적 인정, 윤리적 책임이 계속 교차하는 사례다. 졸업작의 역사적 변형, 1994년의 소매와 몸판, 디올 수트의 조형, 마르지엘라의 인물 연출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옷을 이야기로 만들었다. 그 성취를 읽는 일은 찬사나 면죄부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작품의 기술과 그것이 놓인 맥락을 함께 살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