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에 모리: 나비가 이동한 몸과 무대
영화 의상과 항공사 제복에서 파리의 손작업까지.
ÉPOPLI ·

날개의 윤곽을 만드는 재료
나비의 날개는 하나의 로고이면서 천을 바라보는 방법이었다. 1990년 봄여름의 붉은 나비 드레스는 실크 시폰 상의와 크레이프 치마에 구슬로 수놓은 나비를 결합한다. 하나에 모리 역사를 이 작품에서 시작하면 상징과 제작이 분리되지 않는다. 비치는 얇은 부분과 더 단단히 떨어지는 치마 사이에서 나비 문양은 몸의 표면을 가로지르는 연결점이 된다. 날개의 대칭은 몸의 중심을 강조할 수 있지만, 자수의 위치와 크기에 따라 시선을 바깥으로 움직이게도 한다. 같은 도안이라도 프린트와 구슬 자수는 다르게 작용한다. 전자는 색을 천의 면에 남기고 후자는 빛과 작은 무게를 더한다. 따라서 나비를 일본을 뜻하는 장식이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다. 상징이 반복될 때마다 소재와 크기, 옷의 용도가 바뀌었다. 이 글은 그 반복을 통해 영화와 비행기 객실, 뉴욕의 저녁 모임과 파리 작업실을 연결한 방법을 살펴본다.
도쿄의 주문과 영화의 화면
1926년 시마네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성장한 그는 문학을 공부한 뒤 드레스메이커 학원에서 양장 제작을 배웠다. 1951년 신주쿠의 히요시야 스튜디오는 맞춤 주문을 받는 출발점이 되었다. 하나에 모리 역사는 처음부터 해외 무대의 성공담이 아니었다. 지역 고객의 몸에 맞춰 옷을 만들고 영화사와 일하면서 의상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여러 경로를 경험했다. 남편 겐 모리는 사업 파트너였고, 영화 작업에는 감독과 배우의 요구가 더해졌다. 1956년 영화 《미친 과실》에 사용된 붉은 꽃무늬 남성 셔츠는 이 초기 작업의 구체적인 예다. 전시 목록은 붉은 바탕에 흰 꽃을 인쇄한 면 소재로 설명한다. 관객에게 옷은 홀로 제시되지 않고 배우의 행동과 장소, 화면 속 다른 색에 둘러싸인다. 일상에서 입는 셔츠의 형태를 유지한 채 무늬와 대비로 인물의 존재감을 만드는 방법을 여기서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영화의 모든 의미나 배우의 성격을 의상 제작자의 의도 하나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시장과 작업실을 연결하다
1965년 뉴욕 발표와 1977년 파리 메종 설립은 서로 다른 시장에 대응한 전환점이다. 하나에 모리 역사에서 오트쿠튀르는 특별한 옷을 뜻하는 막연한 수식어가 아니라 파리의 제도와 작업실을 수반하는 제작 방식이다. 브랜드의 공식 연혁은 미국 활동 이후 몽테뉴 대로에 메종을 열고 정기적으로 작품을 발표한 과정을 기록한다. 1963년 시작한 비비드의 기성복과 맞춤 제작은 같은 이름 아래 있어도 공급 방식이 달랐다. 미국 고객에게 소개된 옷은 일본 직물의 성질을 서양식 의복의 형태 안에서 보여 주었다. 두 지역을 절반씩 섞었다고 생각하기보다 천을 어느 방향으로 놓고 어떤 무게로 떨어뜨리는지 살펴보는 편이 정확하다. 단단한 띠 원단과 가벼운 실크는 같은 소매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작자는 원단을 고르는 단계부터 착용 상황을 예상해야 한다. 해외 진출은 문양의 이동인 동시에 주문과 생산, 치수 조정과 운송을 연결하는 조직의 문제였다.

비행기 객실의 색과 움직임
일본항공의 제복 세 세대를 비교하면 의상이 일하는 몸을 다루는 방식이 보인다. 1967년형은 밝은 하늘색, 1970년형은 짙은 파랑의 짧은 원피스와 붉은 벨트, 1977년형은 긴소매 줄무늬 셔츠를 겹쳐 입는 구성이었다. 하나에 모리 역사에서 유니폼은 저녁 드레스보다 덜 중요한 부수 작업이 아니다. 승객이 알아보기 쉬운 일관된 인상과 착용자가 여러 동작을 수행하는 조건이 한 옷에 만난다. 색 대비는 소속을 명확히 하고, 겹쳐 입는 방식은 소매와 몸판에 다른 역할을 부여한다. 세 형태를 차례로 놓으면 유행의 길이 변화만 아니라 몸을 나누는 선의 변화도 읽을 수 있다. 미니 길이가 당시 화제가 되었다는 항공사의 기록은 사회적 반응을 알려 주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승무원의 착용 경험을 알 수는 없다. 유니폼의 평가는 이미지와 실제 업무의 조건을 함께 보아야 한다. 공식적인 표정을 만들면서도 그 안에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 이 작업의 핵심이다.
문양을 옮기는 사람들
나비 문양과 함께 꽃, 서예와 회화도 옷의 표면을 구성했다. 하나에 모리 역사에서 이런 이미지는 전통을 그대로 옮긴 표본이 아니라 몸에 맞춰 다시 배치해야 하는 재료였다. 1968년의 기하학적 나비가 염색된 실크 새틴 저녁 드레스와 1990년의 구슬 자수를 비교하면 날개의 윤곽을 만드는 도구부터 다르다. 매끄러운 새틴에서는 광택의 방향이 무늬와 겹치고, 자수에서는 작은 입체가 천 위에 그림자를 만든다. 전시 목록이 같은 모티프를 여러 시기의 작품으로 구별해 적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의 상징으로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다는 점과 모든 옷이 같은 구조라는 주장은 다르다. 직물 도안을 개발한 사람과 염색·자수를 맡은 사람의 기술이 있어야 그림이 착용 가능한 면으로 바뀐다. 완성된 드레스만 볼 때도 문양이 봉제선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접힌 부분에서 어디가 사라지는지를 살펴보면 도안과 재단이 만나 조정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객석에서 보이는 옷
오트쿠튀르의 손작업은 무대 의상으로도 이어졌다. 공식 연혁에는 1985년 라 스칼라의 《나비부인》, 이듬해 파리 오페라의 누레예프판 《신데렐라》 의상 제작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에 모리 역사에서 무대는 드레스를 크게 보여 주는 장소에 그치지 않는다. 객석의 거리, 조명과 배우 또는 무용수의 동작 때문에 일상의 옷과 다른 판단이 필요하다. 얇은 천의 겹이 가까이서는 섬세해도 멀리서는 하나의 색으로 합쳐질 수 있고, 긴 장식은 회전할 때 전혀 다른 선을 그릴 수 있다. 이것은 작품별 미공개 제작법을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용 옷을 볼 때 적용할 관찰 기준이다. 디자이너는 공연 전체의 저자가 아니며 음악과 안무, 연출을 맡은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유니폼이 여러 착용자의 공통된 인상을 만든다면 무대의 옷은 특정한 역할과 장면에 맞춰 달라진다. 두 분야를 함께 보면 그의 경력을 나비가 새겨진 고급 드레스만으로 한정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회고전에서 다시 만나는 경력
2004년의 마지막 파리 발표 이후 그는 교육과 문화 활동을 이어 갔고 2022년에 사망했다. 하나에 모리 역사는 생전의 새 작품과 사후의 전시·브랜드 운영을 구별해 마무리해야 한다. 2026년 4월 15일부터 7월 6일까지 도쿄 국립신미술관에서 열린 탄생 100주년 전시는 옷과 자료 약 400점을 함께 다루었다. 2026년 10월 11일 기준 이미 종료된 전시이며 현재 진행 중인 행사로 소개하지 않는다. 이러한 회고는 유명한 옷 한 벌보다 제작과 유통, 미디어가 연결된 경력을 보게 한다. 초기 영화 셔츠, 객실 승무원의 제복, 나비를 다른 재료로 표현한 드레스는 서로 대체할 수 없는 사례다. 하나의 국적이 모든 형태를 설명하지도 않는다.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보이고 입히는 옷이었는지에 따라 같은 표면의 의미가 달라졌다. 오늘날 그의 작업을 읽는 출발점은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라는 관용구보다, 하나의 문양이 다른 몸과 기술을 만나 어떤 선택을 요구했는지 확인하는 데 있다.
주요 연표
- 1926 — 시마네 출생
- 1951 — 히요시야 스튜디오 개업
- 1965 — 뉴욕 컬렉션 발표
- 1977 — 파리 메종 설립
- 2004 — 마지막 파리 쿠튀르 발표
- 2022 — 사망
- 2026 — 도쿄 탄생 100주년 전시
참고 자료
- NACT — 2026 exhibition checklist (PDF)
- The Met — Hanae Mori biography
- Hanae Mori — official chronology
- JAL — uniform history
- NACT — 2026 centenary exhib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