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준: 준지의 예복과 거리 사이
트렌치코트와 비행 재킷, 턱시도를 다른 비례로 돌려놓는 작업.
ÉPOPLI ·

턱시도에서 바이커로
2026년 가을·겨울 쇼는 검은 턱시도로 시작해 모터사이클 의상으로 끝났다. 같은 무대의 양 끝에 예복과 속도를 위한 옷이 놓인 셈이다. 정욱준 준지 역사를 읽는 핵심은 이 둘을 어떻게 연결하는가에 있다. 재킷의 어깨와 허리, 바지의 부피를 조정하면 사회적 격식을 나타내던 옷이 다른 태도를 얻는다. 반대로 바이커 의상의 단단한 표면도 정교한 재단과 만나 일상적인 외투의 언어로 바뀐다. 뉴스텔지아라는 제목은 새로움과 향수를 결합하지만, 실제로 관찰할 것은 과거의 형태가 어느 부분에서 변형되는지다. 오버사이즈 재단은 단순히 큰 치수를 고르는 일이 아니다. 어깨가 놓이는 위치, 팔이 빠져나오는 각도, 옷자락의 길이가 함께 바뀌어야 의도된 윤곽이 만들어진다. 준지의 익숙한 옷이 낯설어지는 순간은 바로 이 구조의 조정에서 시작된다.
옷 가까이에서 자란 디자이너
정욱준 준지 역사의 주인공은 준지라는 브랜드를 만든 디자이너 정욱준이다. 1967년생으로, 남대문에서 아동복을 만들고 판매한 부모 곁에서 옷과 원단을 가까이했다. 미술대학의 공예 분야를 공부하다 군 복무 후 에스모드 서울에서 패션 교육을 받는 길로 옮겼다. 1992년 졸업 뒤 시폰, 클럽 모나코, 닉스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여러 회사의 상품을 만드는 경험은 독립 이전의 기반이었다. 1999년 론커스텀을 시작했고 서울의 컬렉션을 거쳐 2007년 준지로 파리 무대에 진입했다. 론커스텀과 준지는 이름만 다른 동일한 출발점으로 합칠 수 없다. 전자는 국내에서 자신의 옷을 전개한 초기 단계이고 후자는 국제적인 시즌 발표를 지속하는 새 브랜드의 시작이다. 학업, 기업의 디자인실, 독립 브랜드를 거친 순서는 옷을 만드는 기술과 그 옷을 시장에 제안하는 방식이 함께 축적되었음을 보여준다.
트렌치코트와 제작 조직
초기 파리 작업에서 트렌치코트의 재해석이 주목받았다. 정욱준 준지 역사에서 클래식은 그대로 보존할 완성품이 아니라 다시 나눌 수 있는 구조다. 트렌치코트의 재해석이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어깨와 소매, 앞판의 겹침처럼 익숙한 부분이 다른 비례로 움직이는지 살펴보면 된다. 옷의 종류를 알아볼 수 있으면서도 몸을 둘러싸는 방식이 달라질 때 변형의 효과가 생긴다. 2012년 패션 그룹과 결합한 일은 이러한 실험을 지속할 제작·유통 조직의 변화였다. 삼성물산의 회고에서 그는 소재, 마케팅, 상품 분야의 전문가가 지원해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초기 파리 팀은 자신과 세 디자이너, 머천다이저로 구성되었다는 회고도 남아 있다. 큰 조직의 지원은 작품의 아이디어와 같은 것이 아니지만, 매 시즌 샘플을 완성하고 다른 시장에 전달하는 조건을 바꾼다. 독립성과 조직의 역할을 동시에 보아야 브랜드가 성장한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미래 도시의 비행 재킷
2016년 피티 우오모에 초청되어 발표한 가을·겨울 컬렉션은 정욱준 준지 역사의 미래 도시를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커다란 어깨의 가죽 의상과 양털 안감을 댄 비행 재킷은 몸을 보호하는 장비를 연상시켰다. 소라야마 하지메의 로봇 그림이 재킷 등에 놓여 옷의 표면에 또 다른 신체를 만들었다. 디자이너는 직접 인터뷰에서 혼란 이후의 도시와 공각기동대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로봇의 금속 같은 이미지가 손으로 그려졌다는 점은 실제 가죽과 그림 속 기계 사이의 대비를 더한다. 협업 그림은 정욱준이 직접 그린 작품이 아니라 소라야마의 시각 언어다. 넓어진 라펠과 과장된 어깨는 평범한 비행 재킷의 비례를 바꾸며 그림이 놓일 면적도 넓힌다. 이처럼 이미지와 오버사이즈 재단은 따로 장식되는 것이 아니라 한 몸의 외곽과 표면을 함께 조직한다.
보이이시의 길이와 면적
2026년 봄·여름 보이이시는 정욱준 준지 역사에서 다른 종류의 대비를 보여준다. 팔레 드 도쿄에서 공개된 옷들은 수트와 데님, 구조적인 형태와 흐르는 형태를 나란히 두었다. 삼성물산이 공개한 착장 가운데 커다란 카무플라주 봄버 재킷은 검은 탱크톱과 아주 짧은 스커트, 무릎 길이 양말, 로퍼와 조합되었다. 상체를 크게 덮는 재킷과 다리를 드러내는 짧은 하의의 면적 차이가 시선을 움직인다. 카무플라주가 군복의 기억을 지니더라도 이 조합은 실제 군복을 재현하지 않는다. 아이템이 가진 통상적인 성별이나 용도를 재배열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경계를 넘는다는 말은 추상적인 선언만으로 남지 않는다. 같은 옷차림 안에 놓인 길이, 부피, 소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디자인의 효과는 어느 한 벌의 신기함보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부분이 만났을 때 생기는 균형에 있다.
예복과 모터스포츠
정욱준 준지 역사의 2026년 겨울은 다시 예복과 모터스포츠를 연결했다. 뉴스텔지아의 알파인스타즈 RSRV 협업은 여섯 착장으로 소개되었으며, 검은 예복에서 바이커 복장으로 이어지는 쇼의 마지막 부분을 구성했다. 모터스포츠 협업을 읽을 때 주목할 점은 운동의 흔적이 패션의 실루엣으로 어떻게 옮겨오는가다. 몸을 분할해 감싸는 듯한 패널과 단단한 윤곽은 재킷을 평면적인 표면 이상으로 만든다. 다만 런웨이 의상의 기능을 실제 경주용 보호장비와 동일하게 주장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데님과 가죽, 울을 함께 사용한 이 시즌은 소재의 사회적 이미지도 바꾸었다. 데님으로 예복의 인상을 만들면 일상복의 원단과 의례적인 형태가 동시에 읽힌다. 모터스포츠 협업은 외부 로고를 덧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가 오래 다뤄 온 보호와 과장, 격식의 문제에 새로운 제작 언어를 더했다.
코스모스로 이어진 현재
2026년에는 일정의 변화도 있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6월에 예정된 파리 쇼를 취소한다는 발표가 나왔고, 이후 2027년 봄·여름 코스모스 컬렉션이 공개되었다. 정욱준 준지 역사의 현재를 취소 소식 하나로 끝낼 수 없는 이유다. 코스모스에서는 길어진 커프스와 둥근 어깨, 잘록한 허리와 큰 하의, 가죽과 레이스, 꽃무늬가 대비되었다. 꽃무늬 외투도 둥근 어깨와 큰 윤곽 속에 놓여 장식과 구조가 함께 작동했다. 같은 해 중화권에서는 미스토홀딩스와의 유통 협력으로 청두와 베이징 매장이 전개되었다. 이는 창작자의 개인 활동과 구분되는 브랜드 조직의 확장이다. 에스모드에서 배운 제작, 기업의 디자인실, 론커스텀, 파리의 준지를 이어 보면 변하지 않는 것은 특정 유행이 아니라 익숙한 옷을 분해하고 다른 비례로 돌려놓는 방식이다. 예복과 거리의 옷을 함께 읽는 시선이 그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낸다.
주요 연표
- 1967 — 출생.
- 1992 — 에스모드 서울 졸업.
- 1999 — 론커스텀 시작.
- 2007 — 준지로 파리 진출.
- 2012 — 패션 그룹 합류.
- 2016 — 피티 우오모 초청 발표.
- 2026 — 뉴스텔지아와 코스모스 공개.
참고 자료
- Yeongnam Ilbo: designer biography
- Vogue Italia: education and early career
- Samsung C&T: career and partnership, 2016
- Vogue France: Pitti interview
- Dazed: autumn/winter 2016
- Samsung C&T: spring/summer 2026
- Alpinestars RSRV: six-look FW26 collaboration
- Re-Edition: Newstalgia
- FashionSnap: June show cancellation
- PAUSE: COSMOS spring/summer 2027
- Misto Holdings: China distribution 2026
- FHCM: current house rec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