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호스: 입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옷
입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옷
ÉPOPLI ·

울로 만든 이브닝드레스
엘리자베스 호스 역사는 호화로운 저녁 옷을 어떤 천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할 수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1935년경 드레스는 성기게 짠 울을 사용한다. 허리를 미리 강하게 조이지 않은 넉넉한 형태는 벨트로 조절할 수 있고, 목 주변의 비대칭 주름은 스카프처럼 내려온다. 반짝이는 실크와 장식이 있어야만 격식 있는 옷이 된다는 기대에서 벗어나는 선택이다. 그는 천을 몸이나 인대 위에 직접 놓아 형태를 잡는 입체 재단에 관심을 가졌다. 옷이 먼저 정한 이상적인 몸에 착용자를 맞추기보다, 천의 여유와 고정 방식을 통해 입는 사람이 모양을 조정하게 했다. 단순해 보이는 윤곽 안에 소재의 통기성과 움직임, 허리 위치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함께 있다. 편안함을 미완성이나 무성의함과 동일하게 보지 않는 시각이 이 작품의 출발점이다.
파리의 지식을 미국의 옷으로
1903년 뉴저지 리지우드에서 태어난 그는 바사 칼리지에서 경제학과 영어를 공부하고 1925년 졸업했다. 같은 해 파리로 건너가 도레에서 일했으며, 복제와 취재, 디자인 현장을 경험했다. 엘리자베스 호스 역사는 프랑스 기술을 배우면서도 프랑스 상표의 권위를 의심한 경력이다. 1928년 뉴욕에서 로즈메리 하든과 호스하든을 열었고 1930년에는 호스라는 이름으로 이어 갔다. 이 동업 관계는 개인의 미학과 별도로 살롱의 운영 기반을 보여 준다. 그는 마들렌 비오네의 작업에서 배운 입체 재단을 활용했지만, 미국 여성이 반드시 파리의 지시를 따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입된 유행의 이름과 실제 생활에 맞는 옷의 기능을 분리한 것이다. 뉴욕에서 자신의 고객에게 옷을 만드는 일은 국가적 우월함을 주장하기보다, 옷의 기준을 구매자의 몸과 생활로 돌리는 방법으로 읽을 수 있다.
화살표와 줄무늬가 만드는 재치
1937년 실크 드레스 더 타츠는 엘리자베스 호스 역사에서 유머가 옷의 구조로 나타나는 사례다. 앞뒤의 선명한 화살표는 가슴과 엉덩이 쪽으로 시선을 이끈다. 장식이 몸의 존재를 모호하게 감추는 대신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관람자에게 되묻는다. 작품 제목과 도형은 서로 작동하며, 옷을 단순한 고급 소재의 진열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렇다고 모든 작품이 같은 농담을 반복하지는 않았다. 1936년경의 줄무늬 브로케이드 드레스에서는 연보라와 보라, 아이보리의 결이 중요한 요소다. 브로케이드는 무늬를 짜 넣은 직물이며, 색 띠의 방향과 이어짐이 형태를 읽는 기준이 된다. 몸에 붙인 장식의 양보다 천의 조직과 선을 어떻게 배열하는지가 먼저 보인다. 두 작품을 나란히 읽으면 재치와 엄격한 제작이 반대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국기가 실린 1940년의 옷
엘리자베스 호스 역사를 디자인과 정치로 나누기 어려운 작품이 1940년의 지오그래픽이다. 리넨과 실크로 만든 드레스에는 여러 나라의 국기가 붙어 있다. 뒷부분에는 일본과 이탈리아, 나치 독일의 작은 깃발이 배치되어 추축국을 풍자한다. 신시내티 미술관 보존가의 연구는 이를 나치 독일과 추축국의 위협에 대한 미국의 느린 대응을 비판한 작품으로 설명한다. 국기를 단순한 여행 취향이나 장식 무늬로 읽으면 이 배치의 뜻이 사라진다. 동시에 오늘날 전시에서는 역사적 혐오 상징이 포함된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옷은 당시의 논쟁을 전달하는 물건이지만, 모든 표식을 오늘의 찬성 표시로 간주할 수는 없다. 이 작품은 2011년 미술관에 들어왔을 때 손상과 미완의 과거 처리가 겹친 상태였다. 보존 연구는 정치적 의미와 함께 실제 직물이 어떻게 남았는지도 기록한다.
글을 쓰고 공장으로 간 디자이너
1938년에 나온 패션 이즈 스피니치는 엘리자베스 호스 역사를 읽는 또 하나의 출발점이다. 이 책은 프랑스산이라는 이유로 옷을 더 좋게 판단하는 관행을 비판한다. 오래 입을 수 있는 개인의 스타일과 끊임없이 바뀌는 판매용 유행을 구별하려는 문제의식이었다. 그는 1940년 살롱을 닫은 뒤 신문 PM에 글을 썼고, 전쟁 중 항공기 엔진 공장에서 일했으며 자동차 노동조합과도 활동했다. 옷을 만드는 사람의 노동을 판매 이미지 뒤에 숨겨진 일로만 보지 않은 셈이다. 기성복은 더 많은 사람이 좋은 옷을 입을 가능성이었지만, 생산 수량이 늘어난다는 사실만으로 공정한 노동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부유한 고객을 위한 맞춤복을 만들던 경력과 대중에게 열린 의복을 지향한 생각 사이에는 긴장이 남는다. 이 간격을 지우지 않아야 그의 글과 사업을 함께 이해할 수 있다.
남성복의 색과 몸의 자유
엘리자베스 호스 역사의 후기에는 남성에게 허용된 옷의 범위를 넓히려는 실험이 있다. 1962년경의 실크 기모노형 재킷은 여러 색의 면을 조합하고, 1964년 손뜨개 면 수영복은 밝은 색과 무늬를 남성의 작은 의복에 모은다. 여성에게만 아름다운 색을 즐길 권리를 주는 관습을 뒤집는 제안이었다. 몸에 걸치는 방식과 소재는 서로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누가 어떤 옷을 입어도 되는지 정한 사회적 규칙을 건드린다. 루디 건라이크과의 친분도 후기 활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두 사람은 1967년 전시에서 함께 다뤄졌으며, 의복과 몸의 관계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질문했다. 다만 같은 전시에 참여했다고 해서 공동 제작한 옷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그의 기성복 구상 역시 획일적인 유니폼을 입히려는 것보다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히는 문제와 이어진다. 1950년경의 보라색 울 코트 안감에도 붉은 주황과 보라색 새틴이 쓰여, 겉과 안의 색을 함께 고려한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후계 하우스 대신 남은 옷과 기록
1971년 사망한 뒤 엘리자베스 호스 역사는 거대한 패션 하우스의 연속된 시즌보다 옷, 글, 스케치와 고객의 기록으로 남았다. 브루클린 미술관의 스크랩북과 디자인 자료는 메트로폴리탄 소장 의상과 함께 제작 과정을 비교할 수 있게 한다. 고객 도레트 크루제 플라이슈만이 남긴 드레스들은 신시내티의 연구에도 중요한 기반이다. 주문자와 디자이너의 오랜 관계가 작품을 보존하는 통로가 된 것이다. 2023년 FIT의 전시와 2026년 신시내티의 회고전은 이런 자료를 새로운 관객에게 소개했다. 옷을 볼 때에는 지금도 유행할 만한가만 묻기보다, 입는 사람이 무엇을 조절할 수 있고 어떤 규칙에서 벗어나는지 살펴볼 수 있다. 느슨한 울 드레스와 국기 드레스, 다채로운 남성복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그 질문에 답한다. 디자인의 기준을 패션 체계의 권위에서 실제 사용자에게 옮기려 했다는 점이 작품들을 연결한다.
주요 연표
- 1903 — 뉴저지 리지우드 출생.
- 1925 — 바사 졸업 후 파리로 갔다.
- 1928 — 로즈메리 하든과 호스하든 설립.
- 1938 — 패션 이즈 스피니치 출간.
- 1940 — 살롱 폐업.
- 1967 — 루디 건라이크과 함께 전시에서 소개됐다.
- 1971 — 사망.
- 2026 — 신시내티 미술관 회고전.
참고 자료
- The Met: Evening dress, c.1935
- FIT: Elizabeth Hawes, Along Her Own Lines (PDF)
- Encyclopedia of Clothing and Fashion: Elizabeth Hawes
- The Met: In America, Elizabeth Hawes
- The Met: The Tarts, 1937
- FIT: American Beauty exhibition brochure (PDF)
- NATCC: Conservation of Geographic, Chandra Obie Linn (PDF)
- Cincinnati Art Museum: 2026 exhibition
- Cincinnati Art Museum: Curator Cynthia Amnéus on Hawes
- FIT: Paris, Capital of Fash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