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몬타나: 어깨와 움직임의 공간
과장된 외곽과 내부의 여유를 연결한 파리의 옷.
ÉPOPLI ·

어깨는 어디까지 옷의 일부인가
스페인 의상박물관의 1980~1990년 앙상블은 클로드 몬타나 역사를 어깨와 움직임의 관계로 읽게 한다. 끈 없는 목선의 면 니트 점프수트 위에 브이넥 가죽 재킷을 입는 구성이다. 점프수트는 상의와 바지가 연결된 옷이다. 재킷은 어깨에서 크게 부풀지만 가슴 아래에서는 몸에 맞게 좁아지고, 바지는 느슨해 다리를 움직일 여유가 있다. 넓은 어깨가 반드시 몸 전체를 딱딱하게 가두는 것은 아니다. 상체 바깥의 부피와 팔 주변의 공간, 아래쪽의 여유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가죽 재킷이라는 익숙한 이름만으로는 이런 복잡한 패턴을 설명하기 어렵다. 패턴은 천이나 가죽을 자르기 위한 본을 뜻한다. 이 옷의 힘은 장식의 양보다 몸을 둘러싼 공간을 어떻게 배분했는가에서 나온다. 과장된 외곽과 실제 착용자의 움직임이 함께 성립하는가가 그의 작품을 읽을 핵심 질문이다.
장신구와 가죽에서 시작하다
1947년에 태어난 그는 장신구 디자인에서 출발했고, 가죽을 다루는 기술에 관심을 가지며 의복으로 이동했다. 클로드 몬타나 역사의 초기에는 여러 기성복 업체에서의 작업과 맥더글러스에서 익힌 소재 경험이 놓인다. 1975년 다니엘 뤼케 드 생제르맹과 함께 첫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브 생로랑의 모델로 알려진 협업자는 옷이 몸에서 어떻게 보이는가를 이해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을 단 회사는 1970년대 후반에 자리 잡았다. 설립 연도는 자료마다 1978년 또는 1979년으로 제시되므로 첫 컬렉션과 법인 설립을 하나의 순간으로 합치지 않는 편이 정확하다. 초기 장신구의 작은 물체에서 재킷의 큰 외곽으로 규모가 바뀌었지만, 단단한 표면과 몸의 관계라는 관심은 작품을 비교하는 유용한 관점이다. 이후 1980년대 파리의 패션쇼에서 그는 티에리 뮈글러와 함께 극적인 형태를 제시하는 디자이너로 자리 잡았다.
드레스 아래의 바지
빅토리아국립미술관의 1980년 봄여름 드레스와 바지는 클로드 몬타나 역사를 가죽만으로 설명하지 않도록 돕는다.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면 의복이며 단추와 금속 여밈을 사용했다. 라벨에는 파리라는 활동 무대와 이탈리아 생산, 지보를 위한 작업이라는 관계가 함께 드러난다. 하나의 이름 아래 국제적인 제작과 유통의 연결이 있었던 것이다. 드레스와 바지를 함께 입는 구성은 한 벌의 옷이 다리를 드러내거나 가려야 한다는 선택을 바꾼다. 위의 길이와 아래의 길이가 겹쳐지며, 몸을 따라 보이는 선도 하나의 치마 끝에서 멈추지 않는다. 면은 저녁 의복의 광택과 다른 표면을 제공하므로 비례와 겹침이 더 직접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대표 소재 하나로 디자이너를 기억할 때 놓치기 쉬운 것은 이런 일상적인 재료와 생산 방식이다. 옷의 인상은 가죽이라는 소재 자체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핀스트라이프의 다른 권위
교토복식문화연구재단의 약 1990년 수트는 클로드 몬타나 역사에서 남성복과 연관된 무늬가 다른 몸의 비례로 옮겨 가는 장면이다. 가는 세로줄인 핀스트라이프를 넣은 울 플란넬로 재킷과 치마를 만들었고 지퍼를 사용했다. 플란넬은 표면에 부드러운 보풀이 있는 직물이다. 사무적인 단정함을 떠올리게 하는 줄무늬가 강한 어깨와 만나면 수트가 전달하는 권위의 인상도 달라진다. 세로줄은 넓은 외곽 안에서 위아래 방향을 다시 제시한다. 부피가 크다는 사실과 시선이 수직으로 흐른다는 사실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박물관은 이를 1980년대 여성의 사회적 활동과 연결해 설명한다. 옷 한 벌이 사회 변화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에 등장하는 몸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 주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지퍼라는 여밈도 고전적인 수트의 인상에 다른 속도와 기능의 감각을 더한다.
랑방에서 달라진 제작의 범위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맡은 랑방의 오트 쿠튀르는 클로드 몬타나 역사의 제작 조건을 바꾸었다. 오트 쿠튀르는 숙련된 공방이 고객을 위해 제작하는 고급 주문복 체계다. 1990년 봄여름에는 스웨이드 재킷과 색이 달라 보이는 실크 태피터 반바지, 구리 벨트를 조합했다. 스웨이드는 가죽의 보풀 있는 표면을 활용한 소재이며, 태피터는 비교적 형태가 또렷한 실크 직물이다. 일상적인 재킷과 짧은 바지의 구성이 서로 다른 표면과 금속의 띠를 통해 쿠튀르 안으로 들어온다. 이전의 가죽 재킷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제작 능력과 재료를 얻은 셈이다. 그는 이 시기에 두 차례 데 도르를 받았다. 그러나 작품의 평가와 회사의 판매 성과는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았다. 랑방과의 짧은 관계는 좋은 컬렉션이 곧바로 안정된 사업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경력의 전환점으로 남았다.
머리 위까지 이어지는 협업
모자 디자이너 스티븐 존스와의 협업은 클로드 몬타나 역사의 실루엣을 머리 위까지 확장한다. 갈리에라미술관의 협업 목록은 1986년 봄여름부터 이어진 여러 시즌을 기록한다. 랑방의 1990년 봄여름 옷에는 실크 튈 모자가 함께 제시되었다. 성긴 망사인 튈은 스웨이드나 금속 벨트와 다른 무게를 만들며, 머리 주변에 비어 있는 면적을 형성한다. 어깨와 머리의 폭을 함께 보면 모자는 마지막에 얹는 장식만이 아니다. 얼굴이 놓이는 위치와 몸 전체의 비례를 조정한다. 런웨이에서 옷은 걷는 모델, 머리 모양과 모자, 여러 의상의 등장 순서 속에서 읽힌다. 이런 관계를 고려하면 강한 어깨라는 한 가지 표현보다 더 넓은 제작의 세계가 보인다. 같은 디자이너의 이름으로 발표되어도 전체 모습에는 재단과 소재 생산, 모델과 모자 제작자의 서로 다른 기술이 만난다.
이름과 작업이 갈라진 뒤
1997년 자신의 브랜드를 떠나게 된 위기는 클로드 몬타나 역사의 사업적 단절이었다. 2024년 사망 이후 파리 장식미술관은 추모 자료에서 그의 순수한 선과 풍부한 직물을 다시 조명했다. 오늘 남아 있는 작품은 1980년대라는 시대의 이미지만 보관하지 않는다. 몸 아래에서 좁아지는 재킷, 드레스와 바지의 겹침, 핀스트라이프와 지퍼의 조합, 랑방에서의 스웨이드와 실크가 각각 다른 문제를 푼다. 이 옷들을 나란히 보면 크고 강한 형태가 언제나 같은 재료나 같은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후기의 브랜드 활동과 본인의 디자인을 구분한 뒤에는, 생전 작업의 실질적인 범위가 오히려 선명해진다. 그의 영향은 어깨를 무조건 크게 만드는 공식보다 외곽의 과장과 내부의 여유를 함께 생각하게 한다는 데 있다. 옷이 입는 사람의 몸을 따르면서도 그 바깥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주요 연표
- 1947 — 출생
- 1975 — 첫 컬렉션 발표
- 1980 — 드레스와 바지 앙상블 제작
- 1986 — 스티븐 존스와의 협업 기록 시작
- 1990–1992 — 랑방 쿠튀르 디자인
- 1997 — 자신의 브랜드에서 이탈
- 2024 — 사망
참고 자료
- Museo del Traje — Ensemble, Claude Montana
- Vanity Fair — Claude Montana interview and profile, 2013
- NGV — Dress and trousers, spring/summer 1980
- KCI — Suit, c.1990
- Palais Galliera — Stephen Jones exhibition dossier (PDF)
- Musée des Arts Décoratifs — Hommage à Claude Montana
- Stephen Jones — Biography and collaborations
- Fashion Spider — Stephen Jones exhibition, documented garment cap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