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김: 겹옷과 장식으로 만든 패션의 무대
한 벌의 옷과 배우의 동작이 함께 만든 공연.
ÉPOPLI ·

벗겨지는 옷도 디자인의 일부
1996년 카이로 패션쇼의 일곱 겹 드레스는 한 장의 사진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모델이 겉옷을 차례로 벗으면 안에 있던 색과 장식이 새롭게 드러난다. 앙드레 김 살롱 드 앙드레 역사는 옷의 모양뿐 아니라 무대에서 흘러가는 시간으로 읽어야 한다. 클리블랜드미술관은 이 작품을 여성에게 쌓인 부담을 벗는 연극적 이미지로 해석했다. 이는 박물관의 해석이며,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구조는 서로 다른 색의 의상을 겹치고 순서대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겹옷 드레스의 장식은 가만히 있을 때의 화려함에 머무르지 않는다. 바깥의 옷이 사라질 때마다 다음 표면이 중심이 되어 한 모델이 여러 장면을 만들어낸다. 최종 모습만을 완성품으로 생각하면 이 디자인의 대부분을 놓친다. 탈의의 순서와 몸짓, 관객의 기다림까지 작품의 형태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김봉남이 살롱을 열기까지
1935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난 김봉남은 1961년 국제복장학원에서 의상 제작을 공부했다. 1962년에는 반도호텔에서 패션쇼를 열고 서울 소공동에 살롱 드 앙드레를 시작했다. 앙드레 김 살롱 드 앙드레 역사는 남성 디자이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남아 있던 시기의 직업 선택과 연결된다. 새로운 이름으로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고 배우와 고객에게 입힐 옷을 제작하면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1964년 엄앵란의 결혼식 드레스는 이 초기 경력의 중요한 사건이다. 웨딩드레스는 사적인 주문품이지만 배우의 결혼식 사진을 통해 훨씬 넓은 관객을 만났다. 한 사람의 의례를 위한 제작과 대중매체 속 이미지가 겹친 것이다. 1966년 파리 패션쇼로 이어지는 국제 활동을 보더라도 그는 옷을 판매하는 살롱과 한국 디자인을 소개하는 무대를 동시에 운영했다. 해외 발표가 시작된 뒤에도 그의 작업의 중심은 한국에 있었다.
붉은 바탕에 솟아나는 문양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1980년대 이브닝 앙상블은 붉은 바탕과 금빛 장식을 통해 멀리서도 윤곽이 드러난다. 앙드레 김 살롱 드 앙드레 역사를 표면 가까이에서 보면 문양을 어떻게 붙이고 부피를 만드는지가 중요해진다. 아플리케는 다른 천을 모양대로 잘라 바탕에 꿰매는 기법이다. 용과 식물 같은 모티프를 평평한 인쇄로만 처리하지 않고 천의 두께와 장식의 높이로 강조할 수 있다. 역사적 왕실 의복의 문양을 사용하지만 결과물은 특정 시대의 복식을 복원한 유물이 아니다. 현대의 드레스와 재킷에 권위와 의례의 이미지를 옮긴 옷이다. 붉은색과 금빛의 대비는 무대 조명 아래에서도 장식을 읽히게 하고, 풍성한 실루엣은 몸 주변에 공간을 만든다. 이 앙상블을 일곱 겹의 공연과 비교하면 고정된 옷의 표면과 움직이며 드러나는 표면이라는 두 방향이 보인다.
계절을 공연으로 만드는 장치
2007년 세계지식포럼에서 선보인 2008년 가을·겨울 컬렉션은 계절을 하나의 장면으로 만들었다. 인공 눈이 내려오는 가운데 남성 모델들이 크림색 퀼팅 코트를 입고 등장했고, 모피 장식과 밝은 색 드레스가 이어졌다. 앙드레 김 살롱 드 앙드레 역사에서 음악과 배경은 판매용 의상을 둘러싼 부속물이 아니라 관객의 읽기를 이끄는 장치였다. 크리스마스 음악과 나무 옆에서 반짝이는 여러 색 점무늬가 보이면 같은 옷도 축제의 옷으로 인식된다. 배우 박시후가 참여한 이 무대에는 정장과 칵테일드레스, 겹옷 드레스와 혼례 의상이 함께 있었다. 품목의 다양함을 하나로 묶는 것은 같은 재단법보다 발표의 이야기였다. 따라서 그의 컬렉션을 일상복의 기능만으로 평가하면 무대에서의 목적을 놓치기 쉽다. 관객에게 어떤 감정의 순서를 전달하려 했는지를 옷의 소재와 동선에 연결해 볼 필요가 있다.
배우가 완성하는 옷의 이야기
2008년 상하이에서 발표한 2009년 봄·여름 작업은 한국과 중국의 궁정 이미지, 금색과 은색, 선명한 여러 색을 한 공연으로 엮었다. 앙드레 김 살롱 드 앙드레 역사의 협업자는 재단실 밖에도 있었다. 이다해와 김정훈은 금빛 용 장식의 의상으로 왕실을 연상시키는 짝을 이루었고 장근석과 함께한 장면은 인물들의 만남과 이별을 연기했다. 같은 해 인터뷰에서 디자이너는 극적인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배우가 필요하다고 직접 설명했다. 아플리케와 자수가 옷의 표면을 만든다면 배우의 표정과 동작은 그 표면을 이야기로 바꾼다. 한국 연예인의 해외 인지도도 관객을 모으는 역할을 했지만 스타의 등장만으로 작품을 설명할 수는 없다. 옷의 장식과 두 인물 사이의 거리, 움직임을 하나의 구성으로 보는 편이 이 무대의 특징에 가깝다. 의복과 공연을 함께 만드는 방식이 그의 해외 발표를 구별했다.
단체복과 대중적 이미지
그의 활동은 1988년 서울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유니폼과 여러 생활용품 협업으로도 이어졌다. 앙드레 김 살롱 드 앙드레 역사에서 궁정풍의 옷과 단체의 유니폼은 서로 다른 용도를 가진다. 전자는 한 인물을 돋보이게 하고 후자는 여러 사람을 하나의 집단으로 읽게 한다. 유니세프와 연결된 자선 패션쇼 역시 발표를 사회적 행사와 결합했다. 한편 1999년 옷로비 사건의 청문회는 그의 이름이 디자인과 별개의 맥락에서 소비된 시기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를 경력의 시련으로 기록한다. 이후에도 그는 작업을 이어갔고 2008년 송도 쇼에서는 외교관과 배우가 같은 무대에 섰다. 마지막의 흰 웨딩드레스와 어두운 신랑 정장은 그가 반복해 사용한 행복한 결말의 형식을 보여준다. 하얀 옷을 입던 디자이너 자신의 모습과 무대의 흰색이 겹치면서 색은 브랜드를 알아보는 시각적 표식이 되었다.
창립자의 작품과 계승의 시간
2010년 8월 12일 그의 생애가 끝난 뒤 브랜드와 작품의 시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어졌다. 앙드레 김 살롱 드 앙드레 역사는 창립자가 만든 옷, 아들 김중도가 이어가는 사업, 박물관의 소장과 전시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2024년 클리블랜드미술관 전시는 그의 옷을 한국 복식과 후대 디자이너의 작업 옆에 놓았다. 이진윤의 2011년 작품은 앞선 디자인을 해석한 다음 세대의 옷이지 앙드레 김의 사후 신작이 아니다. 현재 아틀리에도 계승을 명시하고 2024년 추모 패션쇼를 기록한다. 생전의 무대에서는 배우가 의상을 움직였다면 사후의 전시에서는 소장처와 연구자가 재료와 맥락을 설명한다. 작품을 오늘 읽는 방법은 그 화려함을 일괄적으로 칭찬하거나 낯선 장식으로 밀어내는 데 있지 않다. 무엇이 겹쳐지고 어떤 문양이 솟아 있으며 마지막 장면까지 색이 어떻게 변하는지 따라가면, 옷을 통해 공연을 구성했던 작업의 구체성이 드러난다.
주요 연표
- 1935 — 고양 출생.
- 1961 — 국제복장학원에서 수학.
- 1962 — 살롱 드 앙드레와 초기 패션쇼.
- 1966 — 파리 패션쇼 개최.
- 1988 — 서울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유니폼.
- 1996 — 카이로 일곱 겹 드레스 공연.
- 2010 — 8월 12일 별세.
- 2024 — 클리블랜드미술관 한국 꾸뛰르 전시.
참고 자료
- Cleveland Museum of Art: André Kim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앙드레김
- 한국복식학회: 1960년대 디자이너 연구
- The Korea Times: World Knowledge Forum show
- The Korea Times: Shanghai show
- The Korea Times: André Kim interview, 2008
- The Korea Times: Songdo show
- André Kim Atelier: succession history
- Cleveland: Korean Couture, 2024